깔깔 마녀의 웃음소리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저 웃음소리는 깔깔 마녀가 틀림없다. 웃음소리에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내리 칠 기세다. 천둥과 번개가 파란 하늘을 위협한다. 순간 나는 귀청이 떨어져 내릴 것 같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세포를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털어낼 수 없다. 마른하늘에서 유리 파편이 와르르 쏟아진다.
깔깔 마녀가 또 웃는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아주 가늘고 도도한 고음의 주파수다. 어떨 때는 몸속 깊숙이 모아 두었던 문장들을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낸다. 이때 세상에 나온 소리들이 저들끼리 소리를 내다가 서로 충돌할 때도 있다. 갖가지 소음들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은 그 어떤 소리보다 튀어서 자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법의 주술을 외우고 있어서 주변을 죄다 빨아들인다.
"어머머머 네가 만들 거야"
"좋아 좋아 내가 역시 줄을 잘 탔어"
"깔깔 까르르까르르..."
고압선이 흐르는 집안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나는 이미 집사가 주술에 걸렸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감전되어 팔다리가 흔들흔들하는 집사. 저러다가 눈이라도 치켜뜬다면 너무 무서울 거다. 집사야! 왜 그래 그건 너무 이상하잖아. 순간 나는 좀비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나도 모르게 털을 세우고 몸을 부풀려 방어태세를 취한다. 집사는 나의 존재는 아랑 곳 않고 외출을 서두른다. 현관문을 빠꼼히 연다.
"나갔다 올게, 코 자고 있어"
집사의 외출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추석 연휴로 애들이 다녀갔고 지금은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는 것. 그래서 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맞은 이유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은 집사의 마음이다. 식구들이 다 모이니 사람 사는 집 같다더니 지금의 마음은 뭐지. 마치 홀가분한 듯한 모습이 아닌가. 아무튼 집사의 속내가 나도 궁금하다.
집사는 나갈 때마다 자고 있으란다. 내가 잠보도 아니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일 저지를까 봐 미리 단두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사야. 오늘은 나도 잠이 안 오는데 어쩌냐. 나도 실컷 놀고 싶어. 내가 좀 설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기를 바랄게 옹~!
작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 있자니 슬슬 장난기가 발동한다. 거실 한복판에는 햇살이 뒹굴며 놀고 있다. 어슬렁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폴짝 식탁 위로 뛴다. 그리고 식탁에서 김치 냉장고 위로 가뿐히 올라간다. 역시 높은 곳에 올라야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집사가 말려놓은 꽃다발이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젤리로 살짝 건드렸는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난다. 이번에는 꾹 꾹 발로 눌렀더니 바스락바스락 마른 꽃들이 부서져 내린다. 견딜 수 없는 짜릿함이다. 입으로 물어뜯고 발로 밟고 꽃잎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본다. 부엌 바닥에 꽃비가 흥건하다.
아까부터 컴퓨터 화면에서는 새의 영상이 쉼 없이 돌아간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소리와 음악, 영상들이 굉장히 많은데도 집사는 콕 집어서 새에 관한 영상을 틀어 놓고 외출한다. 나름 나를 위한 배려라고 한다. 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무척 흥분된다. 아파트 옥상, 안테나 끝에 앉아 꼬리를 흔들어대는 새를 매의 눈으로 관찰한다.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모양새가 어찌나 자극이 되는지 화면을 뚫고 들어 것 같은 기세로 들이댄다. 야~옹 야 옹. 캬옹~! 캬옹~!
집사의 온기가 앉아있는 의자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집사가 이곳에서 글을 쓸 때, 자판기를 타닥타닥 치는 소리를 들으며 집사 엉덩이 뒤에 끼여 있기를 즐긴다. 공간이 좁긴 하지만 나는 넓은 공간보다 좁은 공간에 익숙한 동물이 아닌가. 거기 앉아 있으면 의자와, 집사의 따뜻한 체온, 그리고 내 몸이 꽉 끼어서 환상의 궁합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때로 집사는 내가 자기 뒤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의 일에 빠져들곤 한다. 어깨가 아프다 등이 결린다 하면서도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그러다 나의 존재를 느낄 때면 자판을 치던 손을 뒤로 뻗어 내 몸을 쓸어내린다. 집사가 쓰고 있던 글을 거의 완성했거나 발행을 했다는 신호인 거다. 집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충 마무리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나는 빈 틈 없는 그 공간에서 쉼을 즐기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들면서 갑자기 집사가 궁금해진다. 집사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나가던 집사의 뒷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막상 집사를 보내고 나니 너무 심심한 걸. 눈꺼풀이 무겁게 감기려 하는데...
발 빠르게 카톡이 올라온다.
카톡! 카톡! 카톡.
와우!!! 가을 풍경 한 자락이 원두막에 앉아있다. 내 집 마당채에 앉은 듯 신발을 벗고 오늘이라는 행복을 곱빼기로 산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깔깔 마녀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샌드위치를 꺼낼 것이고 울 집사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라 할 것이다. 네모 반듯하게 싼 샌드위치를 잘라 삼각형을 만들 것이다. 그러다가 잠시 고개를 갸웃갸웃하겠지.
"어머나 칼을 거꾸로 밀어 넣었네 어쩐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법의 웃음소리가 또 떼구루루 떼구루루 굴러 언덕배기를 내려갈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웃음이 된다. 까르르까르르. 깔깔 마녀와 집사는 이렇게 어린 속내가 닮았다.
그런데, 둘로 갈라진 그 속에 이렇게 예쁜 환상의 조합이 들어있다니! 채친 당근이 새콤달콤하게 절여져 듬뿍 들어가 있고 계란과 햄, 그리고 로메인상치가 들어있다. 이거 만들 때 "계란을 살짝 덜 익히는 게 중요해"라며 그녀는 마치 무슨 비법을 전수하듯이 귀띔을 한다. "저거 만드는 거 별거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어" 깔깔 마녀의 긴 손가락이 당근라페의 노랗고 약간은 붉은 속을 가리킨다.
나는 인간들이 먹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처음 집에 와서 먹어 본 인간 음식은 소시지였다. 식탁에 막 구워놓은 소시지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냉큼 올라가 입에 물고 어그적 어그적 거렸다. 그때 놀란 집사가 절반 남은 소시지를 뺏은 이후로는 아예 인간 음식에는 손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탓이다. 나도 그렇고 집사도 그렇고.
원두막에서 차린 점심 한 끼는 근사했다. 크기도 크고 통통한 당근라페는 반으로 잘랐는데도 제법 컸다. 집사의 입 속에서 알맞게 뭉개져 집사의 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또 한 입 또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쩝 쩝 소리가 난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서 커피를 마신다. "담백한 맛이 너무 좋아. 행복이라는 게 별거냐. 이게 바로 행복이지 안 그러니~!"
도심 속에서 이만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시골 정서가 늘 그립다던 집사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쉼의 공간이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메밀꽃 밭은 장관이다. 뜸하게 온 그새 온 천지가 붉은 메밀꽃으로 덮여 있는 것이다.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푸른 하늘이 언제 내려왔을까. 사진 속에서 하늘이 첨벙거린다. 어느새 달빛아래 반짝이던 소금 같은 평창의 메밀꽃밭이 그려지는지는 것이다. 장돌뱅이인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와의 연분이 되었던 물레방아가 소설의 페이지를 서너 장 넘기며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p.s
집사는 깔깔 마녀와 오랜 시간 원두막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신기하게도 발이 달린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가을날의 푸른 햇살이 가시광선처럼 번져갔다
사람들이 처진 어깨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래,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
웃으며 손에 손에 희망 한 줌씩 슬쩍 쥐어주었다.
그래도 달라진 건 없는 듯 보였다. 다만,
그들에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행복 주머니가 활짝 부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