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집사 엿보기
달력을 넘기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랑을 덧칠하며 지나갔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살이 되어간다. 집사의 숲에는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초록초록한 잎이 무성하다. 가을이 되면 낙엽을 깔아놓고 내가 낙엽을 가지고 놀게 한다. 겨울이면 잎이 떨어진 가지 위에서 창밖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어 좋다. 계절이란, 와야 할 때를 어떻게 알고, 가야 할 시점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이렇게 높은 가지에 올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새벽 스케치
어제 잠을 설쳤다. 집사가 잠을 못 이루면서 어찌나 부스럭부스럭거리던지 나도 잠 위치를 몇 번이나 바꿨다. 요즘 새벽집회가 일찍 있다면서 알람을 맞춰놓았는데도 집사는 시계 알람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실 집사는 아침잠이 많아 일어날 때마다 힘들어한다. 오늘도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난 집사가 남편과 함께 예배를 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역시 집사의 창문 단속은 필수다. 행여, 방충망에 벌레라도 보이면 나에게 돌발상황이 일어날 것을 늘 염려해서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좁게 열린 문으로 빠꼼이 얼굴을 들여미는 집사가 잘 갔다 오겠다는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오늘도 한결같은 충성, 나는 매우 만족한다.
쾅!!! 문이 닫혔다.
집사야 걱정하지 마 옹! 온통 내 세상이다.
문이 닫히고 어둠뿐이지만 나는 어둠 속이 더 좋다. 어둠 속에서 내 눈은 더 빛나고 익숙하다. 집사는 별 걸 다 걱정한다니까. 집사가 오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리니까 채워놓은 밥이나 먹고 또 잠을 자거나 밖을 구경하면 된다. 나는 집사가 걱정할 만큼 어리지 않다.
현관문 버튼 소리가 난다. 행동개시를 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문이 열리면 집사는 나를 찾을 것이고 나와 눈이 딱 마주치면 "기다렸어?"라고 먼저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응 엄마"라고 얘기하 듯이 응석 부리며 뛰어가는 것이다. 이때 꼬리는 높이 쳐들고 살랑살랑 흔들면서 가면 된다. 그러면 집사의 만발한 웃음을 볼 수 있다.
"어이구 우리 아기 기다렸어 어구구~~"
나는 대단한 찬사를 받게 된다. 나의 뒤통수와 등, 그리고 목덜미를 마사지해 주는 집사의 손길을 만끽하며 나는 그저 배를 깔고 누우면 된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그윽한 눈빛으로 집사를 바라본다. 그러면 집사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코에 뽀뽀를 할 거다. 이때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며 뽀뽀를 연거푸 한다. 울 아기 코뽀뽀라고 하면서.
말의 위력
나는 이 집에 들어온 유일한 침입자다. 집사 말대로 예쁜 침입자다. 고백건대 집사야! 그날 내가 집사를 무지 기다렸던 거 아시나 옹. 그 말은 내가 집사를 간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울 집사는 꼭 반대로 생각한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데려왔다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제 온 집안에 나의 냄새를 풍겼고 내가 잠깐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나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예삐야! 예삐야! 하던가 짝짝 짝짝짝 박수를 연거푸 친다. 우리의 신호는 늘 박수를 치는 것이어서 구석에 있던 나를 찾아내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우리 관계는 날이 갈수록 친밀도 상승이다. 쫀득쫀득한 집사의 사랑이 날마다 나를 살찌게 한다.
지금의 나는 깨끗하고 흰 털이 강점이다. 뭐, 사람들은 코숏은 가장 흔한 대한민국의 고양이라나. 그렇다. 흔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특별한 존재다. 그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울 집사가 늘 하는 말이다.
"우리 집 예삐는 다르지! 그렇지 "
말이란 참 신기하다. 집사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해도 얼마나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겨서 높은 곳에도 펄쩍 뛰어오른다. 예전에는 무모한 도전도 즐겼다. 그런데 지금은 몸이 무거워져서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번에 기분이 업되어서 나뭇가지에 훌쩍 뛰어올랐다가 애를 먹었다. 글쎄 가지가 휘청거리며 부러지는 바람에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렇구나 한 살 한 살이 다른다는 것을 알겠구나. 집사도 요즘 몸이 자꾸 처진다면서 힘들어하던데 이참에 집사의 기를 살려줘야겠다. 그러면 나도 실천해 볼까. 요즘 글 쓰느라 낑낑대는 집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지. 글 열심히 쓰라고 응원해야지. 아~~ 옹.
집사는 나를 위해 사료는 무엇을 먹일까. 모래는 어떤 것이 좋을까. 먼지가 덜 날리는 것으로 해야 한다면서 내가 쓰는 물건 하나하나 신중히 고른다. 얼마 전 피부와 털을 위해 사료를 바꿔주었는데 그래서인지 뻣뻣하고 푸석푸석하던 털에 윤기가 돈다. 손으로 쓰다듬으면 너무 매끄러워 바닥에 툭 떨어질 것만 같다. 아니 차르르 감긴다고 해야 할까. 이런 언어를 구사하다니 내 언어 실력도 차츰 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가끔 집사가 읊어주는 낭독을 통해 글공부를 한다. 내 귀를 보라. 이만한 귓바퀴를 차르르 굴리면 웬만하면 다 터득할 수 있다. 무언의 신호에 끌려 올라가는 쫑긋한 귀와 아이라인은 완벽한 나의 매력 포인트다. 내가 나의 매력을 얘기하는 것이 우습지만 어쩔 수 없다. 은근히 내 피알을 한 것 같다. 집사처럼 나도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한다. 간혹 식탁에서 집사랑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누나가 그랬다. "엄마는 듣고 나면 기승전결 자기 자랑이야" 누나와 집사는 참 재미있는 한 쌍이다. 엄지 척을 잘하는 누나 때문에 집사도 은근 날개를 단다니까. 집사야! 나도 집사를 닮아가는 걸까!
내가 온 후로 집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모두들 그랬다. "예삐는 뭐 해? 사진 좀, 동영상 좀 보내줘"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사진을 맘껏 찍힌다.
나의 취미
나의 취미는 집사를 관찰하는 것이다. 눈빛도 흐트러지지 않게 똑바로 쳐다보면 집사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뭐 라드라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던가. 어쨌든 누군가에게 너무 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좀 힘들기도 하겠다. 그래도 나는 하루 종일 집사가 무얼 하는지 무얼 먹는지 무얼 저렇게 쓰고 있는지 관심이 많다. 그래서 집사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고개를 빼어 들어 내 레이더망에서 집사를 주시한다. 귀를 쭈삣거 린다. 내 귀는 안테나처럼 소리를 빨아들이는데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소음도 들어온다. 그래도 걱정 없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으니까. 나는 집사가 치는 자판소리에 온통 귀가 쏠렸다.
드디어 자판기 소리가 멈췄다. 집사가 소파에 앉는 이 틈을 타야 한다. 나는 일명 무릎냥이다. 둘째 가면 서러울 정도로 무릎을 좋아한다. 특히 울 집사의 무릎은 신기하다. 올라가기만 하면 잠이 쏟아진다. 집사 팔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왜 그리 편안해지는 걸까. 집사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핸드폰을 볼 때 무릎은 늘 무방비 상태이므로 집중공략을 한다. 핸드폰에 머리를 비비거나 번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집사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번쩍 뛰어올라 무릎을 차지한다. 배 깔고 누우면 다 내 땅이다.
내 생각
나는 숲이 좋다. 화려하지 않은 나무의 얼굴들과 무성한 사랑의 잎들,
그리고 잎 사이로 보이는 말간 하늘.
아침이면 찾아오는 새소리, 줄지어 날아가는 제비 떼의 평온과 간간이 불어오는 고덕산 바람.
집사는 그곳이 내 고향이라고 했다. 고향 냄새라도 실컷 맡으라면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캣타워를 세워주었다.
집사생각
야옹아! 고향은 그런 것이란다. 무의식 중에 고개를 향하게 되는 어떤 그리움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