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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Sep 02. 2023

서두르지 마, 걱정하지 마

그래도 꿈을 꾸며 살자


이 사진은 고양이 수기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 남편의 눈으로 완성된 사진마다 걸작이다.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설계하는 그 마음이 좋아서 꽃도 더 신나게 피나 보다. 올해는 고양이 그대가 주인공이 되어 봄의 전령과 첫 눈 맞춤을 한다. 몰캉한 젤리로 사뿐사뿐 다가간 한 낮, 행여 꽃잎 다칠세라 조심스레 냄새를 맡고 있는 모습을 보라. 고향 숲의 향기를 끌어와 음미하는듯한 표정이다. 


꽃이 핀 후로는 아예 꽃 속에 틀어박혀 산다. 고양이와 꽃, 초록 잎사귀가 함께 잘 어우러져있다. 이 조화는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기울임 없이 서 있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이 이 사진의 묘미다. 너의 시선은 꽃을 향하는데 자세히 보면 꽃잎은 자유롭다. 그런데도 꽃잎이 원하는 방향은 오직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꽃들은 너와 눈 맞춤이라고 하려는 듯 얼굴을 돌린다. 저것은 환영의 손짓이 틀림없다. 마치 장난꾸러기 같기도 하다. 이리저리 몸을 틀며 깔깔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꽃잎 속에 들어 찬 꽃술은 붉은 입술을 열어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너는 귀를 열어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 나도 덩달아 꽃잎으로 서서 오고 가는 교감을 읽는다. 


그런데 아무리 꽃이 아우성치듯 예뻐도 어디 너만 한 꽃이 있으랴! 내 눈에는 오직 너만 들어오는 것을...



고양이 나이를 사람의 나이로 계산하면 생후 1년은 15살, 생후 2년은 24살이다. 그 이후부터는 1년에 4살씩 더해가면 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15살 한창 사춘기인 너와 삶을 공유하는 중이다. 꿈 많은 나이일 테고 남의 시선보다 내 기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나이다. 그리고 이기적일 수도 있겠다. 한창 자의식이 강해서 슬픔과 기쁨이 많은 변곡점으로 다가오겠다. 그때는 슬픔도 배가 되는 나이다. 


그 시절 나는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나는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지고 가려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엄마가 늘 불쌍했다는 것. 그것이 어린 마음에 담긴 진심이었다. 바람처럼 왔다 가는 아버지의 존재가 내 마음에서 가볍게 날아가버리도록 열심히 공부했다. 그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서 어려움이 있어도 균형을 잡게 된다. 그런데 막상 낯선 길을 택했지만 두고두고 그 길이 그리웠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참을 서서/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에서-


나는 프로스트의 시를 읽을 때면 괜스레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상하게도 무언가 가슴 저 밑바닥을 적시고 있는 슬픔이 울컥울컥 토해지는 것이다. 아무 상의도 없이 대학 진학의 길 대신 덜컥 상업학교에 진학하겠노라고 원서를 냈다. 훗날 엄마는 이 일을 두고 많이 마음 아파했지만 그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한창 경기가 좋을 때라 웬만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때였다. 그것은 참 다행이긴 했지만 내 청춘이 뭉텅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친한 친구들은 모두 진학의 길로 갔다. 분명 함께 걸어온 길이었는데 갑자기 우리는 서먹서먹하니 관계가 소언 해졌다.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 벽이 느껴졌다. 막상 그런 결정을 하고 집으로 오는데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그 후부터 나는 사람을 보면 등의 마음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대신하는 등. 가끔 사람들의 등이 울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웅크린 등을 펴는데 한참이 걸렸다. 


꽃 속에 묻힌 하루가 가고 있다. 지금은 숲의 향기가 저녁노을을 끌고 올 시간이다. 너의 그윽한 눈을 보면 한창 물이 오르는 소리 들린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휘청거리던 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너에게, 두고 온 길은 무엇이었을까. 무성한 잎을 헤쳐나가면 저 끝에 햇살처럼 빛나는 길이 있을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고 나는 진학의 길을 모색했다. 내게도 꽃 같은 시간이 있었을까 가끔 생각해 보면 그때마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학원 시간을 기다리다 어둠이 깃든 사무실에서 깜박하고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깬 텅 빈 사무실은 어떤 무게의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하루의 해가 막 넘어가는 시간은 내게 또다시 막연한 미래가 되었으니까.  


주경야독으로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제 때 가지 못한 길이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내게 꿈이 있었기에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창 꽃다운 시절을 열등의식을 누리며 보냈다. 차라리 누렸다는 표현은 얼마나 즐거운가. 


사람은 늘 선택을 한다. 그랬구나. 돌아보면 내가 밟은 그 자리는 잠깐 머무르는 짧은 방문이었구나. 

그땐 왜 그리 긴 시간처럼 느껴졌을까. 꽃향기를 맡아도 그것이 여유인지도 모르게 시절이 지나갔다. 


서두르지 마, 걱정하지 마, 그리고 

길을 따라 꽃 냄새를 맡아봐. 

너는 단지 짧은 방문을 위해 여기에 있다. -월터 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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