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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Sep 05. 2023

잠자는 숲 속의 고양이

야옹아! 그 잠 나 좀 줄래


고양이의 처소는 자신의 몸을 누 일 정도의 딱 그만한 평수다. 욕심 없어 보이는 저 평안함이 분주한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대학 시절 남편의 자취방이 그랬다. 바닥에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는 딱 그만한 크기였다고. 


너는 유독 화분 위에서 자는 낮잠을 즐긴다. 오늘도 오수를 즐기는가 싶더니 완전히 잠에 취했다. 어쩌면 저렇게 다디단 잠을 자는 것일까. 배를 훌러덩 뒤집고 두 팔은 위로 늘어질 대로 늘어뜨리고 근육이란 근육은 죄다 이완된 모습이다. 세상 모든 근심 걱정 다 내려놓았다. 코라도 골고 있는 것일까? 창을 들여다보는 햇살이 환하다. 


베란다 화분이 너의 처소다. 흙을 묻히며 돌아다닐 걸 미리 염려해서 화분 위에는 늘 수건을 깔아준다. 사실 햇볕이 드나들어야 할 공간을 막고 있는 것 같아 화초에게 늘 미안하다. 확실히 누런 떡 잎도 많이 생기고 자라는 속도가 늦다. 가끔은 화초잎을 따 먹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화초를 계속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대부분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고민은 잠에 대한 것이 많은 것 같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집 안을 뛰어다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야행성인 동물이다 보니 낮에는 잠을 자는 경향이 많고 밤이 그들의 주 무대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어린 고양이일수록 더 활발해서 어느 정도 성묘가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어야 한다. 지금 세 살이 된 우리 집 고양이도 잠 때문에 내가 시달릴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3년 정도 고양이를 기르면서 체험한 것은 습관 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학습의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때에는 함께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이때 넓은 공간보다는 좁은 공간이 더 좋고 문을 닫고 잠을 청하는 것이 좋다. 


잠자는 시간이 되고 불이 다 꺼지면 우리 집 고양이의 경우 거실에 배를 깔고 누워 있다가도 슬슬 방으로 들어와 자기 공간을 찾아간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안고 들어와서 방문을 닫으면 어쩔 수 없이 잠을 자는 것 같기도 하다. 반 강제적인 잠인 셈이다. 무엇이든 정답은 없다. 계속 나가고 싶어 칭얼거릴 때면 문을 열어 주고 놀게 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고양이의 맨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맨발로 바닥을 디디면 오장육부가 다 좋아진다나. 그래서 잠도 잘 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맨발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우연히 친구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함께 맨발 걷기를 했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어찌나 아픈지 자잘한 모래알갱이와 돌멩이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런데 아픈 통증도 몰캉몰캉한 진흙을 밟으면 다 완화되는 것 같았다. 진흙은 마치 고양이 젤리처럼 보드랍고 매끄럽고 폭신폭신하다. 신기한 것은 맨발로 땅을 밟고 나서부터 잠이 슬슬 잘 온다는 것이다.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뭔가 효과가 있는 듯하니 일단 계속해 보기로 한다. 


불면의 주범은 이것이다. 가끔 필이 꽂히는 날에는 늦은 밤에 자판기를 두드리게 되는데 이때 뇌도 톡 톡 생각의 벌판을 뛰어다니며 잠을 다 쫓아버리는 것이다. 글은 왜 저녁 시간에 잘 써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책상에 펄쩍 뛰어오르는 물체가 있었으니 바로 껌딱지다. 나타나자마자 곧장 책장 꼭대기를 오르기 위해 각도를 맞춘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가장 첫 단계는 몸을 낮추는 것. 각도를 맞추었나 싶으면 바닥을 힘껏 밀어 도약한다. 절묘하게 오르는 예술적인 행위이다. 절대 무모하게 내지르는 법이 없으니 계획성 없는 나보다 낫다. 꼭대기에 자리 잡고는 내가 글을 다 쓸 동안 기다려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참 의리 있는 주인님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노화의 수순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불면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80이 넘으신 노모는 밤마다 소설 한 권씩을 쓰신다고 한다. 젊었을 적부터 찾아온 불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잠 한 번 푹 자는 것이 얼마나 부러울까! 아무 데나 머리를 박기만 해도 잠을 자는 고양이의 잠이 얼마나 부러울까! 


잠이 안 올 때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엮어져 영화의 한 장면을 찍듯이 또렷해진다. 똑같은 말을 되씹기도 하고 똑같은 장면을 반복하기도 한다. 걱정도 아닌 것들을 걱정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소추하여 후회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잠자는 모습이 정말 신나지 않은가! 가랑이를 저리 벌리고 마치 춤추듯이 잠을 잔다. 고양이가 배를 훤히 보이고 잔다는 것은 그만큼 주인을 신뢰하는 것이라는데. 어떤 안온함과 평안함이 느껴진다. 고양이의 몸은 온통 둥글다. 잠도 곡선의 잠을 잔다. 


이 모습은 마치 개구리 같지 않은가. 이불에 파 묻힌 얼굴을 보면 잠의 깊이가 느껴진다. 누가 뭐래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저 잠 속에 시간조차 멈춘다. 고양이 털을 쓸어내리면 부드럽고 매끈한 촉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고울수가 있을까. 거친 내 마음이 고양이 털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위안을 받는 것이고 평안을 얻는 것이다.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나날이 감사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혹시 야옹이의 잠을 사고 싶은 분이 있다면 시인의 숲으로 놀러 오시라. 숲에서 만난 야옹이와 그저 눈을 깜박깜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평안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오늘은 네 곁에서 나도 잠에 취해야겠다. 

저처럼 어떤 가식의 올 하나도 걸치지 않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오솔길에서, 

햇살과 공기와 바람을 끌어다 덮고 

어떤 편견이나 흔들림에도 아랑곳하지 말자.  

그저 타닥타닥 사랑의 씨앗 불 지피는 나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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