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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ug 30. 2023

달달한 대화

우리는 무엇을 채우며 살아갈까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존 러스킨



네가 오고부터 집이 온통 달짝지근하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새삼 낯설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찰칵 사진을 찍는다. 러닝셔츠 바람으로 저처럼 달달한 케미를 보이는 남편에게, 너는 집안의 막내 내리사랑이 맞다.  어느 순간부터 이예삐, 이예삐하고 성을 붙여 부르더니 정말 너의 아빠가 되었다. 진정한 대화는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얼마나 배려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배려심은 참 희박할 때가 많다. 우리는 쉽게들 얘기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그 말이 참 힘들다. 그래서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때로 우리 마음은 텅 빈 방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다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을 갖고 있는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마음의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이다. 딱딱한 가슴에는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어서 곧잘 대화가 튕겨 나온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의 대화는 그랬다. 서로의 마음에 화살이 꽂혀 빼내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런 대화는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 몸의 언어가 중요하다. 혹여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것은 아닌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호감을 가지고 온몸으로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는 시선의 각도가 중요하다. 남편에게 마치 응석을 부리며 투정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내가 들을 수 없는 저 둘만의 이야기는 참 달달한 풍경이다. 말하는 너의 표정을 보라. 앞모습을 확실히 볼 수는 없지만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남편은 권위를 다 내려놓은 민낯의 표정이다.  저 둘의 각도를 보면 내 마음도 자꾸 둥글어진다. 둘의 모습에서 모서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서로를 향해 배려하고 사랑으로 건네는 눈빛만으로 형성된 관계이다. 


그저 들어주려는 남편의 자세가 보인다. 몸을 구부려 바라보는 모습은 충성스럽기까지 하다.  주인님을 성심껏 떠받드는 모습이다. 너의 목소리도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소리가 야옹!이라는 건 옛말이다. 너는 바닥에 눌리는 듯한 묘한 소리를 낸다. 칭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투덜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문장을 구사하기도 한다.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고양이의 언어가 사람의 언어랑 섞여 점점 길어지고 높낮이가 생긴다. 


그러고 보니 너는 참 대단한 능력자다. 남편의 모습이 저렇게 변한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랑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지 어느새 딱딱한 가슴에 물처럼 스며들었다. 그러더니 사랑이 싹트고 뿌리 뻗어 무성한 숲이 되었다. 이 물줄기가 흘러 흘러 닫힌 마음의 밑바닥까지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세상은 얼마나 알콩달콩 재미가 있을까. 저 작은 생물이 끊임없이 다가와 살갗을 비비고 애정을 준 것처럼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랑은 대화의 물꼬다. 


존 러스킨의 말처럼 나는 무엇을 채우며 살아갈까를 생각한다. 온전히 비워 낸 마음이 있어야 채워지는 법. 너의 초라했던 겨울숲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따뜻함을 돌아본다. 너로 인해 나는 어느새 길냥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돌봐야 할 길냥이들, 그들이 겪는 길 위의 고단함을 생각한다. 그들과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가면서 우리의 신뢰도 쌓였다.  오늘도 나는 눈을 껌벅이며 대화를 할 것이고 몸을 낮출 것이다.  


사진 속 달달한 대화를 엿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아무리 보아도 남편의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눈과 귀와 크게 벌어진 입은 온전히 네게 몰입한다. 대화는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둘의 사랑을 설명하는데 이처럼 완벽한 그림이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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