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by 고석근

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현대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그의 저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늦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나는 그때 수많은 입자들이 창조와 파괴의 율동적인 맥박을 되풀이하면서 외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에너지의 폭포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또한 원소들의 원자와 내 신체의 원자들이 에너지의 우주적 춤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물리학에서는 삼라만상의 본질을 물질로 보았다. 그런데 프리초프 카프라는 물질인 원자들이 우주의 춤을 추고 있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의 경전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다라망’이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우리의 몸은 물질이면서 에너지장이다. 물질일 때는 나만의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 홀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물질을 넘어 에너지장이 될 때는 나와 이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다. 물질 위주의 자아의 삶과 에너지장으로 살아가는 참나의 삶.


물질의 몸은 생로병사를 겪는다. 따라서 물질 위주로 살아가면 삶이 고(苦)가 된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물질로만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망상에서 모든 고통이 유래한다고 한다.


자신을 에너지장으로 보게 되면, 온 몸으로 깨닫게 되면 삶이 춤이 된다. 매순간이 감동이 되고 매사가 기적이 된다.


매순간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다. 그래서 명나라의 사상가 이탁오는 동심(童心)만 고이 간직할 수 있으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로 불리는 보르헤스는 그의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 명사가 없고 동사, 형용사만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명사는 물질을 지칭한다. 하지만 물질은 곧 에너지이니 물질은 실체가 아니다. 물질을 보고 이름을 붙이면 우리는 물질을 실체로 착각하게 된다.


동사, 형용사만 있는 세상, 바로 에너지장의 세계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독립적인 행위들의 이질적 연속’을 경험한다.


그들은 우주의 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의 경험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 공간적인 게 아니다.'


우리는 감동을 받으면 몸이 떨린다. 온 몸이 춤추며 웃게 된다. 그러다 기분이 나쁘면 몸이 가라앉게 되고 축 늘어진다. 무거운 물질이 된다.


아이들은 길을 걸어가도 어른처럼 무겁게 걸어가지 않는다. 춤추며 걸어간다. 그러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춤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몸이 우주의 춤을 기억하고 있으면 나이든 게 아닐 것이다.


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견딜 수 없는 잦은 비 끝으로

종이꽃을 접었다 편다


- 강유정,《나 같은 칼날》부분



‘감동 없이 무너지는 날들’


시인은 견디기 위해 ‘종이꽃을 접었다 편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시인은 차라리 ‘나 같은 칼날’에 베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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