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세상

by 고석근

개 같은 세상


철학은 추론을 통해 가르치려고 하지만, 가난은 그것을 실천하도록 만든다. - 디오게네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임박하다고 한다. 모든 지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핵전쟁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19로 지구가 풍전등화인데, 지구인끼리 서로 싸우다니! 지구에 위기가 닥쳤는데, 왜 우리는 서로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하려하지 않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은 지금 어떨까? 코로나 19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같은 사람끼리 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총부리를 겨누다니?


나도 그런 처절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주말 농장에서 텃밭을 가꾸고 오다 마트에 들렀다.


아내와 작은 아이는 마트에 가고 나는 몸이 안 좋아 옆에 있는 전철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아, 갑자기 몸이 이상했다. 심장이 마구 뛰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옆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처음에는 의심스레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 나는 완연한 행려병자였으리라.


핏기 없는 노란 얼굴색, 어눌한 발음, 흙탕물이 여기저기 튀어 얼룩이 진 옷,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애원해도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은 여러 형태의 악몽으로 변주되고 있다. 얼마나 두렵고 슬픈 일인가? 절박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니?


헬레니즘 시대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대표적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 얼굴에 갖다 댔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그러시오?”하고 물으면 “사람을 찾습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나갔지만,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얼굴에 등불을 갖다 댔다고 한다.


그는 여러 작은 나라들이 해체되고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합되던 시대에 살았다. 자신의 가문, 국가를 넘어 세계시민의 윤리를 세워야 하는 시대였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지금과 유사한 시대였다. 이때는 어떤 윤리가 필요한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있는 디오게네스는 개(犬)에게서 인간의 길을 찾았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쉬거나 잠자는 개야말로 우리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닌가?


그는 알렉산더 황제가 찾아왔을 때 포도주통 속에서 개처럼 햇볕을 쬐고 있었다. 황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묻자 그는 “햇볕을 가로막고 있으니 비켜 주시지요.”하고 말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햇볕 쬐는 게 좋다. 뒷산에 올라 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햇볕을 쬐다 온다.


부족한 게 없는 텅 빈 충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산을 내려오며 나는 차츰 속물이 되어 간다.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철학은 추론을 통해 가르치려고 하지만, 가난은 그것을 실천하도록 만든다.”




햇살을 두 손에 담아

멀리 떠나라

바람을 타고 꿈을 좇아

어서 떠나라, 젊음은 멀어진다.

〔......〕

멀리 빛나는 수평선을 보라

노래하며 떠나라

세상은 가난한 자의 것이다.


- 모리스 카렘,《자유》부분



나는 소박한 삶을 좋아하면서도 세속적 가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개 같은 인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개 같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개 같은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난하게 살면 저절로 철인이 된다. 세상만사가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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