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의례

by 고석근

상징과 의례


상징은 우리의 의식을 보다 깊은 내면의 정신적 삶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 조셉 캠벨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신하들은 임금님이 벌거숭이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이만이 소리친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다!” 정말 신하들이 임금님이 벌거숭이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들도 눈이 있는데, 어떻게 벌거숭이 임금님이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임금님이 벌거숭이가 되어 버리면 그들의 옷도 발가벗겨진다.


임금님을 중심으로 귀족 행세를 하며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던 그들이 임금님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임금님이 벌거숭이인 것을 모른 체했던 것이다. 그런 거대한 음모의 그물망을 아이는 단번에 찢어버렸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다!”


이제 새로운 그물망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으니, 아이 때문에 눈이 뜨인 백성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제사’라는 게 있다. 누구나 조상이 신이 아닌 줄 알지만, 가부장 사회는 자신들의 질서 유지를 위해 제사를 엄숙히 거행한다.


그래서 명절은 여자들의 수난일이 된다. 명절이 되면 나의 어머니께서는 음식 준비에 바쁜 며느리들과 술 마시기에 바쁜 우리 형제들 사이에 앉아계셨다.


“얘들아, 전이 식으면 맛이 없다. 빨리 가져다 줘라!” 우리 아내들은 우리들에게 안주거리를 부지런히 갖다 바쳤다.


이 음모의 그물망을 아내가 찢었다. 술을 좋아하는 아내는 맥주를 가져다 동서들과 즐겁게 담소를 하며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어머니께서도 술을 좋아하셔서 며느리들이 따라주는 술을 즐겁게 마셨다. 갑자기 노동판이 잔치판으로 바뀌었다.


많은 가정에서 고부갈등이 심각하다. 어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제사문제로 서로 발길을 끊기도 한다.


비교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다. “상징은 우리의 의식을 보다 깊은 내면의 정신적 삶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제사라는 상징을 일거에 무너뜨려 버리면 우리의 의식과 내면의 정신적 삶이 단절될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 대가족은 명절마다 잔치판을 벌였다. 그때 열었던 ‘대동세상(大同世上)’의 기억은 나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며칠 전에 공부모임의 한 회원이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 저희 집의 제사를 추도식으로 바꾸려 합니다. 추도식에서 낭송할 좋은 시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제사의 정신을 살려나가려는 그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왔다. 평소에 좋아하는 죽음, 가족에 대한 시들을 골라 보내주었다.


우리의 의식과 내면의 정신을 연결해주는 상징과 의례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정신은 분열된다.


제사에 덧씌워진 봉건적 질서를 깨뜨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세울 상징과 의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사막이 되어버린 건, 우리가 상징과 의례라는 오아시스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

우리 가족의 균열을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더디게 가는 시간에 지친 형들이

이러다 차 놓친다며

아우성이다

〔......〕

무엇이 그리 바쁘냐며

일부러 늑장을 부리시는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 위로

플래쉬가 터진다

순간, 담장을 타고 올라온

노오란 호박꽃이

푸른 호박을 끌어안고

환하게 시들어간다


- 이창수,《가족사진》부분



우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다시 뭉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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