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진보는 일보다. - 발터 벤야민
독일의 동화작가 미하일 엔데의 동화 ‘모모’에서 청소부 베포는 말한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자유로운 개인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이 소련과 중국 등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현실에서 구현된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국가들이 강력한 독재국가가 되어버렸다.
왜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을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실패의 원인을 ‘인간’에서 찾는다. 제도, 체제는 사회주의가 되었으나 인간은 그에 맞게 변하지 않아서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세상은 인류가 오랫동안 꿈꾼 세상이었다.
마르크스가 꿈꾼 세상은 사회주의, 능력껏 일하고 능력만큼 대가를 받는 사회를 넘어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였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세상은 석기시대의 원시공동체에서 실현되었었다.
그때는 모든 부족 구성원이 가족이었다. 아이들은 나이 많은 남자에게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나이 많은 여자에게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썼다.
모두 하나의 가족이었기에 각자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를 받았다. 환자나 임산부는 일을 하지 못하였지만, 우선적으로 먹거리를 제공받았다.
우리도 가족끼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마르크스는 모든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 되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그러다 농경이 시작되고 철기문명이 등장하면서 여러 부족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게 되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부터는 가문마저 해체되고 개인이 등장했다.
이제 국가,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개인이 되었다.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의 가족 같은 공동체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혁명의 주체들이 서서히 기득권 세력이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완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를 오랫동안 보아온 돼지들은 자신들이 완장을 차게 되자 자신들도 모르게 완장의 마법에 걸려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이 말한 ‘진보는 일보다’라는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촛불을 통해, 투표를 통해 정치권력을 바꾸어 가야겠지만, 이와 더불어 인간의 ‘내적 혁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 모임, 마을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노동조합 등 여러 단체, 조직 속에서 자신만 아는 ‘작은 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존재와 소통하는 ‘큰 나’가 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김수영,《절망》부분
우리는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하기에 절망한다.
한 걸음에 한 호흡, 한 걸음에 한 호흡......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는’ 천지개벽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