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오래 전 서울의 ㅇ산에서 산사태가 크게 난 적이 있다. 수십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언론과 행정 당국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해 배수로가 막혀서 일어난 참사라고 한다.
그럼 집중호우가 일어날 때마다 배수로만 잘 설치되어있으면 문제가 없는 걸까? 천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서 집중호우에 대비한 엄청난 배수로들을 다 설치할 수 있을까?
집중호우를 몰고 온 태풍, 장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붕은 그 태풍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참새들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포르르 포르르 날아가 몸을 한껏 웅크린다.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린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참새들은 짹짹거리며 대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참새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이다.
그리곤 참새들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로 포르릉 포르릉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을 온전히 물에게 맡겨버리게 되면, 물은 그를 깊이 빠뜨렸다가 다시 물위로 올려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물에게 다 맡겼기에, 물의 운행 법칙에 의해 그는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붕은 큰 날개를 접고 태풍이 불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는 태풍이 불어오면 몸을 하늘로 솟구쳐 올라 태풍에 몸을 맡긴다.
태풍이 그를 남명까지 데려다 준다. 이게 진정한 자유다. 천지자연의 운행법칙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
그래서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천지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것. 천지자연의 운행이 되어 영생이다.
ㅇ 산의 산사태로 많은 사람이 죽고 실종되었다. 물의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천지자연의 운행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란, ‘나’라는 생각 속에 갇혀 있어 자신밖에 모른다.
자신밖에 모르는 참새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천지자연의 운행을 가로 막게 된다. 어느 날 태풍이 불어와 그들을 쓸어가 버린다.
‘하늘에 순응하는 자는 살고 하늘에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맹자).’
동학의 주문에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가 있다.
‘천주(天主)를 모시고(侍) 천지자연의 운행(造化)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定)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가면(永世不忘) 만사와 통하게 된다(萬事知)’는 것이다.
천주는 하늘의 주인이다. 천지자연의 운행의 근원, 법칙 그 자체다. 그 운행의 조화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대붕의 자유가 온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바람아, 나를 마셔라
단숨에 비워 내거라
내 가슴속 모든 흐느낌을 가져다
저 나부끼는 것들에게 주리라
〔......〕
내 미친 울음 끝
가장 고요한 눈동자 속에 태어나
- 나희덕,《태풍》부분
시인은 코로나 19의 태풍 앞에서 울부짖는다. ‘바람아, 나를 마셔라/ 단숨에 비워 내거라’
그리하여 ‘내 미친 울음 끝/ 가장 고요한 눈동자 속에 태어나’ 우리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