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다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내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소. 중요한건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 뿐이오.〔......〕쯧쯧,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해요. 그게 당신의 문제요. 사람들은 꼭 이유를 따진다니까, 그냥 하면 안 됩니까?〔......〕어김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아래 차례를 지켜 나타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진리가 다시 한 번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해오라기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내 안에서,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한 번뿐이라는 것, 그러니 이 세상에 있을 때 즐기라는 경고가 들려왔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프랑스에서 ‘광란의 신년파티’가 열렸단다. 이 비밀 파티에는 전국에서 2천500여 명이 몰려들었고, 참석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다들 한 손에 술병을 쥔 채 음악에 몸을 맡기고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단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들이닥치자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순찰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 시민혁명을 거쳐 근대민주체제를 최초로 수립한 나라. 인문학 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나라. 그런데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광란의 파티를 즐겼을까?
시골에 살 때 개를 기른 적이 있다. 어느 날, 목사리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개는 번개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 뒤에 개가 지쳐 돌아왔다. 목사리 곁에 옆으로 눕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프랑스의 ‘광란의 신년파티’를 보며 오래 전의 시골 개가 떠올랐다.
인류는 오랫동안 목에 ‘이성’이라는 목사리를 매고 살았다.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광란의 축제였다고 한다. 그러다 소크라테스의 ‘이성’이 지배하는 역사가 시작되면서 디오니소스 축제는 사라졌다고 한다.
‘광란의 신년파티’는 이성의 목사리가 풀린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죽음조차 그의 욕망을 가로막지 못한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부활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아름답게 나타난다. 그는 최소한의 소유만 갖고 신명나게 살아간다.
조르바에게는 ‘중요한건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 뿐’이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 행동을 하며, ‘이 세상에 있을 때 즐기’며 살아간다.
조르바는 아이처럼 단순하다. 그래서 망상에 젖어 살지 않는다. 오로지 현재의 삶을 누린다. 살아 있음의 환희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그런 광란의 축제를 하다니!’하고 힐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집콕’하는 사람들은 건전하냐고?
집콕하는 사람들은 가슴의 열정을 억눌렀기에 겉으로 보기에 건전해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열정이 화산처럼 폭발할 것이다. 아니면 열정이 그의 마음을 까맣게 태워버리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롭고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성찰해오던 작가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라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야성의 인간상을 창출해냈다.
이런 인간상이 포스트 코로나의 인간형일 것이다. 자본의 증식과 소비에 중독된 인간을 벗어나야 코로나 19 이후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에 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코로나 19의 암흑 속에서도 디오니소스 축제를 끌어냈다. 이 축제가 원시사회 같은 건강한 축제로 발전할 것인가? 자본주의에 젖은 막장 인간들의 축제로 끝날 것인가?
우리는 이제 이성에서 해방되어 각자의 욕망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냐?’가 중요하다. 조르바 같이 마냥 신나는 욕망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말초적 쾌락의 욕망인가?
모든 인류가 조르바 같은 천진한 욕망으로 사는 게 불가능할까?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수만 년 동안 그렇게 살았는데.
황인숙 시인은 ‘그 여자 늑골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느닷없이 그녀가 몸서리치며
가슴 뜨끔해하는 걸 보았는지?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다행히도 놈은 잠꾸러기.
하지만 바람소리만 나면
빨간 눈을 반짝 뜨고
술렁술렁 고개를 쳐든다네.
오, 제발.
바람이 불면 그 여자의 손은
더듬더듬
담배상자를 찾네.
- 황인숙,《그 여자 늑골 아래》부분
그 여자의 늑골 아래에는 흉가 한 채가 있고, 거기에 붉은 지네가 산다. 평소에는 잘 숨겨 놓고 살지만 오! 바람이 불면 여자는 더듬더듬 담배상자를 찾는다.
담배 한 개비가 지네가 되어 빨간 눈을 반짝 뜨고 술렁술렁 고개를 쳐든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그렇게 여자는 붉은 지네를 잠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