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찾아서

by 고석근

나의 뿌리를 찾아서


언제인가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겉보기에 반드시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절대적인 변화는 아니다.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만물의 변화)라고 한다.

- 장자,『장자- 제물론』에서


어릴 적 명절이면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에 자주 갔다. 그 때 작은 아버지 댁에 간 적이 있다. 새집이었다. 깔끔했다. 할아버지께서 사 주셨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데, 항상 주인집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사는데, 아버지가 장남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결심했다. ‘가문을 일으키자!’ 아마 1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때부터 나는 나의 삶의 목표를 위해 매진했다.

동생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잘못하면 사정없이 응징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장남답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동생들 앞에서 항상 나를 추켜세우셨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동생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동생들이 말했다. “형수님, 형님이 우리한테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시죠? 박정희보다 더 했어요!”

나의 목표대로 우리 형제들은 계층 상승에 성공했다. 다들 화이트칼라가 되어 먹고 살만한 가정을 이뤘다.

하지만 나는 30대 중반에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줄기차게 앞만 보며 걸어왔는데, 문득 길이 끊어진 것이다.

그 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다. 목표 없는 삶은 너무나 신이 났다. ‘나’라는 고정된 정체성은 없었다.

나는 가는 곳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나가 되었다. 나는 여러 모습을 띠면서 동시에 나 하나였다.

하지만 이따금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가면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자전거로 벌판을 달리며 꺼억꺼억 울었다. 깊은 밤에 어릴 적 놀던 냇가에 가 목 놓아 울기도 했다.

그러다 50대에 들어서며 크게 아프고 나서 나의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마 밤 2시쯤이었을 것이다.

어슴푸레 잠이 깼는데, 팔 다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가슴부터 배까지만 온기가 있었다. 심장은 마구 두방망이질을 쳤다. ‘아, 내가 죽어가나 보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마음이 평온했다. 아마 몸에 에너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두려움마저도 느낄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떴다. ‘아, 살았구나!’ 온 몸에 기운이 없어 3일 동안 겨우 밥만 먹고 누워 지냈다.

간신히 기운을 차려 모 대학 병원에 갔다. ‘불안 장애’라고 했다. 모든 강의를 멈추고 병원과 산에만 다녔다.

이때 나는 ‘장자의 나비’가 이해되었다. 장자는 장자이면서 동시에 나비도 된다는 것.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라는 것. 왜? ‘만물은 하나(만물제동萬物齊同)’이니까.

우주는 하나의 기(氣)이지만, 우리의 감각은 우주를 여러 물질의 모습으로 지각한다. 따라서 다 다르게 보이는 물질은 허상이다.

최근에 아버지의 고향에 갔을 때, 허물어진 마을의 빈집들이 나의 헛된 꿈처럼 쇠락해 있었다.

김종삼 시인은 노래한다. 자신이 만난 모든 것들이 ‘나의 본적’이라고.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한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 다니지 못하는 독수리이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 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 김종삼,《나의 본적》부분

나도 내가 만난 것들, 앞으로 만날 모든 것들, 꿈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의 고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껏 나를 옭아매었던 ‘고향’을 완전히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하나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