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없는 세상’을 향하여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 헤르만 헤세
가끔 생각나는 제자가 있다. 동화 평론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 보이고 마음에 품은 뜻이 굳건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글을 쓰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몇 년을 함께 공부하다 떠났다. 나와 그녀의 ‘성질머리’가 부딪쳐 서로를 튕겨 버렸다.
그 뒤 도서관에서 강의 시간에 쓸 그림책을 찾다가 우연히 그녀가 번역한 그림책을 보았다. 그녀의 약력, ㅅ대 국문학과 졸업.
그녀는 ㅅ대 출신이라는 걸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강의하다 보면 ‘SKY 출신’들은 대체로 어떤 행태로든 자신을 알리려 했다.
왜 그녀는 학벌에 무심했을까?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냥꾼은 곁에 토끼가 있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모기가 뺨에 붙어 피를 빨아도 가만히 있을 것이다.
왜? 큰 목표가 있으니까. 그녀는 동화 평론 글쓰기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학벌’ 같은 하찮은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큰 목표가 없이 속물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학벌을 중시한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 학벌은 신분이니까. 학벌은 속물 세계의 상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니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속물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들의 마음은 바람과 물처럼 이 세상의 경계를 쉽게 넘나든다. 그래서 나도 함께 자유로워진다.
그들의 세계에는 학벌의 먼지가 낄 틈이 없다. 오로지 인간의 마음만이 서로의 뺨을 스치고 서로의 몸에 닿으며 찰랑거릴 뿐이다.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삶의 목적은 자신을 활짝 꽃 피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오로지 ‘돈의 신(神)’을 섬기라고 한다. 돈의 신이 임하신 만큼이 자신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돈의 신을 경배하는 데 일생을 보내기 쉽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학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학벌 없는 세상은 간단하다. 각자의 타고난 잠재력을 꽃 피워가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꽃 피워 본 사람은 돈의 신을 더 이상 경배하지 않는다.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 이 세상에 충만한 기(氣)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꽉 채운다.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여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고, 학력에 따른 차별을 줄여나가면 학벌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돈의 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 부분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우리는 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병이 들어도 아프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