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by 고석근

봉사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면서 타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그들은 바로 타인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바그너의 경우』에서



권정생 작가의 그림책 ‘강아지똥’은 스스로를 하찮다고 생각하던 강아지똥이 자신이 고귀한 존재임을 깨달아가는 그림책이다.


돌이네 강아지가 똥을 누었다. 똥의 이름은 자연스레 ‘강아지똥’이 되었다. 날아가던 참새가 내려앉아 똥을 콕콕 쪼면서 말했다.


“똥! 똥! 에그 더러워...... .” 하면서 날아가 버렸다. “뭐야! 내가 똥이라고? 더럽다고?”


강아지똥은 화도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저만치 소달구지 바큇자국에서 뒹굴고 있던 흙덩이가 흘끔 쳐다보며 웃었다.


“뭣 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은 화가 나서 물었다. “똥을 똥이라 하지 않고 그럼 뭐라 부르니? 너는 똥 중에서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


강아지똥은 그만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더러워서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똥.


저만치 떨어져 있던 흙덩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강아지똥아,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지 마.”


흙덩이가 다정스레 달래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흙덩이는 가뭄이 왔을 때 아기 고추를 살리지 못해 벌을 받고 길에 내버려졌다고 했다.


그때 저쪽에서 덜컹거리고 오던 소달구지가 흙덩이를 보고는 “아니 이건 우리 밭 흙이잖아?”하고는 흙덩이를 싣고 가버렸다.


혼자 남은 강아지똥은 중얼거렸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어느 날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강아지똥 앞에서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다.


강아지똥이 물었다. “너는 뭐니?” 민들레 싹이 대답했다.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민들레 싹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 “네가 거름이 되어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자신이 큰 쓸모가 있다는 걸 알고는 민들레 싹을 꼭 안았다.


우리는 남을 위하는 행동, 이타행(利他行)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경고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타인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예수는 남을 도울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강아지똥이 그렇게 한 것이다.


민들레 싹을 도와준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쓸모 있다는 게 신이 났다. 니체는 자신의 힘이 넘쳐흘러서 남을 도와주어야 진정한 이타행이 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하고 나면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런 선한 행동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타인을 소유하려는 것’이 될 수 있다.


어느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었다. “장애인 아이들은 봉사 활동하러 오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그들의 눈빛이 싫대요.”


그 아이들은 ‘나는 정상인인데, 너희들은 장애인이구나! 내가 불쌍한 너희들을 도와줄게’하는 마음이 싫은 것이다.


어느 누가 남의 동정을 받고 싶겠는가! 모든 인간은 내면에 니체가 말하는 ‘신을 닮은 신성(神性)’이 있다.


삼라만상을 보면 다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 있다. 그러다 자신들도 모르게 남을 도와주고 있다.


저 좋아 활활 타오르던 태양의 햇빛이 만물을 키운다. 물은 기쁜 소리를 내며 식물의 뿌리로 스며든다.


나무는 쑥쑥 자라 꽃을 피우고는 잎을 툭툭 떨어뜨린다. 그 잎을 먹으며 흙은 풍성해진다.


천지자연의 조화는 상생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아’라는 게 있어, 자신의 이기심에 빠져들기 쉽다.


우리는 멋있게 살아가려면 강아지똥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나는 어떤 존재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아’에 빠져 버린다. 자아에 빠진 인간은 아무리 사랑을 하려해도 폭력이 되어버린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 최승자, <너에게> 부분



우리의 속마음은 누구나 시인처럼 고결하다.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이 몸을 통해 나올 때는 아름다운 사랑도 되고 무서운 폭력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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