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

by 고석근

탁월함


마음씨가 착하고 아주 주눅이 든 인간이 호인이라는 관념은 사실은 힘의 저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호인은 겁먹은 소심한 성품 때문에 자신을 억제하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힘에의 의지』에서



야시마 타로 작가의 그림책 ‘까마귀 소년’은 자신의 ‘탁월함’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 간 첫날 한 아이가 없어졌다. 그 아이는 교실 밑에 숨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 낯선 아이는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다른 아이들도 무서워하고,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를 무서워했다.


그 아이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왜 아이들은 그 아이를 멀리 할까? 동급생끼리 모여서 그렇다. 많은 아이들이 모여 노는 마을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좀 부족한 아이가 있어도 아이들은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준다. 서로 형과 동생이 되어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에, 하나로 어울려 사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서로 모르는 또래 아이들이 모인 학교는 서로를 경쟁자로 보게 한다. 자신보다 뭔가 더 나은 아이에게는 복종하고 자신보다 못한 아이는 지배하려 든다.


그러다보니 가장 약한 아이가 ‘왕따’가 되는 것이다. 학교를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선생님의 태도에 따라 학급의 문화는 크게 달라진다.


땅꼬마는 시간을 보내며 심심풀이할 방법들을 하나 둘 궁리해 낸다. 몇 시간 동안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책상의 나뭇결도 골똘히 살펴본다.


‘궁즉통(窮則通) 통즉변(通則變)’이다.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변하게 되어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켜보아야 한다.


스스로 궁지를 벗어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스스로 변신할 때까지. 마치 태양이 묵묵히 지켜보며 만물을 살리듯이.


마침내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분이셨다.


땅꼬마는 머루가 열리는 곳은 어디고, 돼지감자가 자라는 곳은 어딘지 죄다 알고 있었다.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를 보며 무척 좋아했다. 꽃밭을 만들 때도, 땅꼬마가 꽃이란 꽃은 죄다 아는 걸 보고 선생님의 눈이 둥그레졌다.


인간은 각자 ‘탁월함’을 타고 태어난다. 이 탁월함을 누가 알아봐 줘야한다. 알아주지 않으면 탁월함은 싹을 틔우다 시들어버린다.


선생님은 땅꼬마가 그린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교실 벽에 붙여 놓고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선생님은 땅꼬마밖에는 알아볼 수 없는 빼뚤빼뚤한 붓글씨도 좋아했다. 그것도 교실 벽에 붙여 놓았다.


그해 학예회 무대에 땅꼬마가 나타나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게 누구야? 왜 저 멍청이가 저기에 올라왔지?”


땅꼬마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 엄마, 아빠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 소리’


6년 개근상을 받은 아이는 땅꼬마 혼자뿐이었다. 길고 긴 6년 동안 땅꼬마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를 생각하고는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


땅꼬마는 식구들이 구운 숯을 팔러 가끔 시내에 왔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안녕, 까마둥이!”하고 인사했다.


까마둥이는 일이 끝나면 먼 산자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어른처럼 어깨를 떡 펴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사라진 산길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우리는 ‘마음씨가 착하고 아주 주눅이 든 인간을 호인’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저 사람은 법 없이 살 사람이야!”


니체는 그건 ‘힘의 저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겁먹은 소심한 성품 때문에 자신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소베 선생님이 없었다면, 땅꼬마는 니체가 말하는 ‘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속으로 시들시들 시들어가며 겉으로 헤헤 웃는 좋은 사람.


숲에 가보면, 다들 잘났다. 서열이 없다. 사람도 각자 자신의 탁월함으로 살아갈 때, 이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까마둥이는 까마귀 소리 하나로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간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봄이 오면

여린 빛 꽃 한번 피우려고

산골짜기에 산다


- 임길택, <산벚나무> 부분



시인은 ‘산벚나무’가 산골짜기에 사는 이유를 안다.


그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산벚나무처럼 빛났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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