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시몬느 드 보봐르
그림형제의 그림책 ‘빨간 모자’는 한 소녀가 어떻게 여자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다.
‘나는 빨간 모자. 할머니가 만들어 준 빨간 모자가 나는 정말 좋아. 나는 언제나 빨간 모자만 쓰고 다니지.’
어느 날 어머니가 빨간 모자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할머니가 편찮으신데 엄마는 갈 수가 없구나. 할머니께 케이크와 포도주를 갖다 드리렴.”
“특히 못된 늑대를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빨간 모자가 숲길을 가고 있는데 무서운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빨간 모자야 안녕? 어디 가니?” “응,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이야.”
빨간 모자와 늑대는 사이좋게 산길을 걸어갔다. 늑대는 멋진 신사 같았다. 빨간 모자는 예쁜 꽃들을 발견하고는 할머니 댁에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꽃을 꺾었다.
“나는 할머니께 드릴 꽃다발을 만들기로 했어. 한 송이를 꺾으면, 더 예쁜 꽃이 보이고 더 예쁜 꽃이...... .”
빨간 모자는 사춘기 소녀다. 심부름을 가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갑자기 야성(늑대)이 올라 온 것이다. 원초적 생명, 근원적 성이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꽃을 활짝 피우고 한순간에 화르르 지는 사랑. 위대한 사랑은 10대의 사춘기 소년, 소녀가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도령...... 다 10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위험한 사랑이다.
빨간 모자는 늑대에게 할머니의 집을 가르쳐주고 늑대는 혼자서 할머니의 집에 먼저 간다.
늑대는 빨간 모자 목소리를 흉내 내어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게 했다. 늑대는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할머니를 한 입에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는 할머니의 옷을 입고 할머니가 잠을 잘 때 쓰는 모자를 쓰고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빨간 모자가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별 의심 없이 할머니의 침대로 다가갔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데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요?” “네 말을 잘 들으려고.” “어머나, 눈도 굉장히 커요.” “네 얼굴을 잘 보려고 그렇단다.”
늑대는 말을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나 빨간 모자를 잡아먹었다. 배가 부른 늑대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사냥꾼이 늑대의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 사냥꾼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침대에 가서 보니 늑대가 자고 있었다.
사냥꾼은 늑대를 총을 쏘아 죽이려다 늑대의 배가 잔뜩 부른 것을 보고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할머니를 잡아먹었는지도 몰라.”
사냥꾼이 가위로 늑대의 배를 가르자 빨간 모자와 할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빨간 모자가 외쳤다. “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늑대 뱃속은 정말 캄캄 했어요.”
사냥꾼은 늑대의 가죽을 벗겨 집으로 돌아가고, 할머니는 빨간 모자가 가져온 케이크와 포도주를 먹고는 기운을 차렸다.
빨간 모자는 할머니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앞으로는 꼭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
사춘기 소녀들은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깊은 무의식에서 늑대가 울부짖을 때마다 수없이 다짐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 잘 들을 게요.”
원초적 성이 흉측한 늑대가 되고, 자신도 모르게 늑대에게 잡아먹힐 때마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자신을 잡아먹은 늑대를 죽이고서, 여성으로 거듭나야 하는 여자의 일생.
나는 생각한다
가랑이가 낳은 집에 대해서
유행에 둔한 건축법에 대해서
실오라기 하나로 이어온 가계에 대해서
이슬의 동그란 노크에 대해서
거꾸로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거미줄에 포박된 우주에 대해서
나는 가랑이로 생각한다
- 조말선, <거미> 부분
시인은 ‘거미줄에 포박된 우주에 대해서’ 가랑이로 생각한다.
남성은 무슨 마술을 부려 여성을 거미로 만들었을까? 그러고서 ‘실오라기 하나로 이어온 가계’에 갇혀 대대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