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by 고석근

신화


우리 안에는 우리가 중심에 이르렀을 때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 조셉 캠벨



아주 오래 전 시 공부를 할 때, 도반들과 함께 이슥한 밤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술을 마셨다.


만취한 나는 철썩이는 물소리를 따라 물가로 갔다. 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저 앞에서는 강물이 흐르고, 여기에 내가 있구나!’


만물제동(萬物齊同)이었다. 나도 만물의 일원이 되어 만물과 하나로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심층심리학가 융이 말하는 ‘내 안의 신화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단박에 다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나의 그때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나이 들어 그 순간을 다시 회상해 본다.


그때 내가 도반들에게 되돌아왔을 때, 원시인들이라면 그때의 황홀경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후 헤어져야 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으로.


원시인들은 나 같은 체험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신화를 만들어갔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전체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갔을 것이다.


신화를 인류가 꾸는 꿈이라고 한다. 원시인들은 커다란 하나의 꿈속에서 얼마나 깊은 평온을 느꼈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속물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세속적인 삶이 거룩한 삶과 하나로 어우러졌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삶, 그들은 모두 득도한 도인의 삶을 살다 갔다. 문명인들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그렇게 위대한 삶을 살아가던 원시부족공동체는 기원전 500 여년 무렵에 철기가 등장하며 산산이 부서졌다.

철기를 가진 부족은 호전적이 되어 다른 부족을 점령하여 노예로 삼고 그들은 귀족이 되었다.


온 인류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던 시대, 이럴 때 지구 곳곳에서는 성현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가르침은 한결 같았다. “네 안의 신성(神性)을 깨닫고 신성의 소리로 살아라!” 자의식이 생겨난 인간의 오만을 경고했다.


원시인들은 나라는 개념이 희미했다. 개인이 무엇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기 문명 이후로 소유가 중심이 된 사회에서 강한 자아가 생겨났다.


자아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은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고,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고 약탈하려 한다.

인류는 이 ‘강고한 자아’로 인해, 기후 위기 등 심각한 종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자아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안의 신화를 깨닫고, 자신 안의 신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 인간의 몸은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져있다.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한 인간에게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영(靈)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 안의 성령은 성부, 성자와 더불어 하나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이 세상의 실체를 에너지로 본다. 즉 영이다. 영원한 생명의 춤이다.


이 에너지 중에서 파동이 약한 건 물질로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의 감각에 의해 물질로 지각되는 것이다.


물질은 사실 에너지인데, 우리가 물질로 인식할 뿐이다. 물질인 우리 몸은 혼과 백으로 이루어져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혼백은 사실 영이다. 물질은 에너지이니까. 불교식으로 말하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우리가 우리 몸을 물질로 인식하면 우리 몸은 생로병사를 겪지만, 에너지로 보면 영생이다.


그래서 예수는 ‘살아있는 동안 영생하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경지를 가끔 체험한다.


내가 오래 전 한강 고수부지에서 겪었던 그 황홀경의 순간이다. 누가나 연애할 때 이런 체험을 한다.


문제는 그런 체험을 쉽게 잊고 속물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질로만 살아가는 삶은 언젠가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물질과 에너지, 혼백과 영이 하나인 삶, 수만 년 동안 원시인들이 살았던 삶의 양식을 되찾아야 한다.


우주가 코로나 19를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간 본래의 삶을 회복하라!”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길가의 나무는 생기 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흘러 가네

모든 만물 봄을 기뻐 맞이하고

내 생은 곧 사라짐을 느끼네

아 그저 그런 것인가

육체가 이 세상에 깃드는 것이 얼마 동안이리오

어찌 마음이 명하는 대로 생사를 운명에 맡겨 두지 않으며

어찌 이제 와 덤벙거리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

돈도 지위도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신선의 세계도 기약할 수 없네

따뜻한 봄볕을 그리워하여 홀로 산과 들 거닐고

또한 지팡이 세워 두고 밭의 풀을 뽑는다

아님 동편 언덕 올라가 느긋히 시를 읊고

맑은 강물 흐르는 곳에서 시를 짓는다

하늘에 맡겨 죽으면 죽으리니

천명을 즐기며 살면 그뿐, 근심할 일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 도연명, <귀거래사> 부분



시인은 말년에 다 버리고 천지자연과 하나가 된다. 오랫동안 정진했기에 가능한 삶이다.


원시인들은 누구나 도달했던 경지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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