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回心)

by 고석근

회심(回心)


인간은 육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산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쇠사슬에 묶이거나 쇠문 속에 갇힌다 해도 자유로운 사람이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는 오랫동안 방탕한 삶을 보내다 어느 날 회심을 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오르내리는 것 같다. 성인의 반열까지 올려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위선자로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를 위선자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정염에 휩싸여 살다가 회심을 했다는데, 그 후에도 욕정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부모임에서 그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두 노인 등 세 편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점은 ‘회심’에 있을 것이다. 회심은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다. 방탕한 마음을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의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때는 마음이 참으로 맑았다.


그러다 마음이 차츰 혼탁해진다. 처음의 마음은 영혼에서 나왔지만, 그 마음이 ‘자아’에 의해 움직여지며 탐욕에 물들어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을 최우선시 하는 마음이다. ‘나’라는 의식은 나를 먼저 챙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아의 마음이 더럽혀지며 자아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깊은 마음속의 영혼이 ‘그건 아니야!’하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이 마음속으로 들어올 때는 그 마음에 수오지심(羞惡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수오지심이 있기에,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회심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톨스토이는 회심을 했다.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갔다. 그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그의 글들은 절절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 점을 봐야 한다. ‘나는 과연 회심을 했는가?’


톨스토이가 회심을 하고서도 정욕을 끊지 못했다는데, 그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인간이란, 회심을 하고서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인가 보다.’ 회심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은 ‘인간의 한계’ 앞에 깊은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회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삶이란 멀찍이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생생한 감각이니까.


그는 어느 기차역에서 쓸쓸히 혼자 죽어갔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집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회심을 하고서 온갖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부활한 예수나 대각을 이룬 석가 같은 성인일 것이다.


생불로 칭송받던 지족 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한다.


회심을 한 톨스토이를 보며 우리는 ‘욕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만일 다른 사회에 살았다면 그의 욕정이 다르게 표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원시생활을 하는 소수민족들은 대체로 성에 대해 관대하다.


성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성에 대해 엄격한 사회에는 온갖 변태가 난무한다.


성을 회심, 처음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가장 인간적인 성 윤리가 나오지 않을까? 톨스토이가 남긴 회두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김영승, <반성> 부분



공자는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을 ‘그 중에 처음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해석해 본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시인은 친구 삼용이의 말을 들으며 ‘반성’을 한다. 자신의 처음 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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