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진리의 중심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진리의 주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메를로 퐁티
주자학(성리학)의 창시자 주희는 성인되는 공부의 첫 단계이자 기본 과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법을 제시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물질(物)을 연구(格)하면 앎(知)에 이를(致)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모든 학문이 이런 이치에 따라 성립되지 않았는가? 물리학은 물질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닌가?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면 사회를 알 수 있다는 학문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명나라의 사상가 왕양명은 격물치지를 몸소 실천해 보았다. 그는 일주일 동안이나 혼신을 다해 정신을 집중시켜 대나무를 쳐다보았다.
대나무에 대나무의 이치가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병이 나 쓰러지고 대나무의 이치를 찾는데 실패했다.
지금 같으면 실험실에서 대나무의 이치를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이치들이 정말 대나무의 이치일까?
대나무를 쪼개고 나누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대나무의 이치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그 연구원은 어느 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 대나무는 원소로 이루어져있었구나!’
하지만 현대물리학은 원소가 물질의 최소 단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현대과학자들은 원소는 핵, 전자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거의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럼 대나무는 텅 비어 있다는 게 대나무의 이치일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우리는 진리를 끝없이 추구해야 하는가? 그때까지의 우리의 삶은? 그래서 왕양명은 ‘진리는 마음에 있다 心卽理’는 주장을 폈다.
대나무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텅 비어 있다는 것도, 결국 우리 마음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삼라만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 마음과의 연관 속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왕양명은 ‘마음 맑히는 공부’에 집중했다. 인간의 타고난 양지(良知), 이치를 잘 알 수 있는 이 능력을 쉼 없이 깨우고 가꾸자.
왕양명은 죽을 때 유언을 해달라는 제자에게 “마음이 환한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
왕양명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희와 다르게 해석했다. 격물(格物)을 사건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온갖 사건을 만난다. 우리 앞에 물질, 사물로 나타나지만 사실 사건들이다.
교통사고도 차라는 물질과 도로가 보이지만, 그건 사건이다. 일단 사고가 나면 바로 잡아야 한다.
무엇으로? 우리 안의 양지(良知)로, 내면의 소리 양지가 가르쳐주는 대로 사건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일상의 삶 속에서 사건을 바로잡는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는 양지에 이르게 된다. 그는 치지(致知)를 치양지(致良知)로 해석했다.
우리는 양지가 깨어날수록 성인(聖人)이 되어갈 것이다. 서양의 영웅 신화에서는 소년은 고향을 떠난다.
용을 물리치고 돌아와야 한다. 용은 우리 안의 나약한 마음이다. 용을 물리친다는 것은 왕양명 식으로 말하면, 치양지다.
그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와 위기에 빠진 고향을 구한다. 진리는 밖에서 구할 수 없다. 진리는 우리의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隨處作主)하면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진리는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일찍이 말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생각하지 말고, 보라!” 생각을 멈추고 보면, 우리 눈에 세상이 그대로 보일 것이다. 주인의 마음 양지로 보게 되니까.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도> 부분
진리 탐구의 길은 우리의 비굴함, 나약함을 극복해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