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by 고석근

내 나이가 어때서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도 약수터에 할머니들이 모여 있다. 주택가를 향해 나란히 앉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 기괴스럽다. 한이 잔뜩 서려 있다. 노래가 아니라 피울음이다.


오래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되셨을 때, 우리는 어머니를 더 살뜰하게 보살펴드려야겠다는 생

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다. 마을의 한 아저씨가 재혼을 했단다.


‘응? 아주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마을 사람들은 갑론을박하는데, 어머니가 한마디 하시더란다.


“자식이 효자면 뭐하냐? 돈이 있으면 뭐하냐?” 우리는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드렸다.


아마 그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는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너무나 컸나 보다.

어머니는 15세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로 소녀들이 정신대에 끌려갈 때였다.


외갓집에서는 서둘러 어머니를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신랑이 바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집을 나와 출가외인이라 친정으로는 가지 못하고, 먼 친척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우연히 외갓집 이웃에 사는 한 노인에게서 들었다.


그 노인에게서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눈물을 삼키며 들었다. 그 후 외갓집에서 어머니가 첫 결혼 생활을 하셨던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아마 어머니는 가마를 타고 가셨겠지.’ 그 길을 지나며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보았다.


어머니가 첫 결혼 생활을 하셨던 마을 입구에서 외갓집 쪽을 쳐다보니 큰 산이 하나 있었다.


‘아, 어머니는 저 산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아버지는 산판일을 하시며 여기저기 떠돌다 집을 나온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호적초본을 떼어보면, 혼인신고가 내가 태어난 후로 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아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할아버지가 부모님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느낌.


항상 단정히 앉으셔서 한자로 쓰인 서책을 읽으셨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참으로 멋있게 보였었다.


그 엄격함 속에 부모님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심층심리학자 융은 말한다, “인생의 전반기는 삶을 위해, 후반기는 죽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어머니의 인생에 전반기와 후반기가 있었는가? 약수터 할머니들의 인생도 어머니의 인생과 거의 같았을 것이다.


가끔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에로스, 대체로 찬양일색이다. ‘나이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젊었을 적의 사랑과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이 같을까? 생명의 기운이 넘칠 때의 사랑과 생명의 기운이 시들어갈 때의 사랑이 같을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인간에게는 생존의 욕구와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욕구가 균형을 잡아야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젊었을 적에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노인들은 그 두 욕구를 어떻게 충족해야 하나?


약수터 할머니들은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과 중년세대들은 두 욕구를 잘 충족하고 있을까?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 서안나, <모과) 부분



소년들이 선데이 서울을 보는 동안, 소녀들은 하이틴 로멘스를 보며 ‘모과’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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