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의식
만일 누가 나에게 내 무덤을 세울 비석에는 어떤 비문이 새겨지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개인'이라는 말이 새겨지기를 원한다고 말해줄 것이다. - 키에르케고르
우리나라는 학벌, 학력이 신분이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다. sky, 서성한...... .
해마다 전국의 대학 서열이 신문에 발표된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대학 순위 싸움이 치열하다.
대학의 순위를 비교할 때는 과별로 비교한다. 대학마다 간판과, 앞에 내세우는 과가 있다.
대학마다 과별로 서열 범위가 넓은데, 비인기과 나온 사람들도 간판과를 내세우며 자신의 대학이 어느 서열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봉건의식이다. 봉건시대에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가문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했다.
왕족에 속하면 한평생 왕족으로, 귀족에 속하면 한평생 귀족으로, 평민에 속하면 한평생 평민으로, 노비에 속하면 한평생 노비로 살았다.
‘개인’은 없었다. 그러다 18세기 후반에 산업혁명, 시민혁명이 일어나며 봉건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소속은 없어졌다. 가문은 사라졌다. 개인,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이 시대에 그 씨들이 우리사회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지역, 직장, 출신 학교가 씨로 부활한다.
선거를 하면 지역에 따라 몰표가 나오는 정당들이 있다. 직장별로 주류를 차지하는 출신대학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 교육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찬스가 없는 집에서는 학교가 자신들의 신분을 정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정당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 ‘개돼지’라고 비난하면서.
인터넷에서 그에 대한 댓글을 보았다. ‘일은 고되어도 마음이 편하니까.’ 마음이 아팠다.
국회의원 선거철이었던 같다. 어린 나는 잠결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찍은 사람이 됐어.”
아버지의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 가난한 소작농인 아버지는 투표 하나로 학벌 좋고 잘사는 여당 국회의원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그건 허위의식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정치의식을 바꾸셨을까?
일자무식인 아버지는 학력이 낮은 사람이 출마한 정당이 설령 아버지에게 이익이 되다 해도 아버지는 거부하셨을 것이다.
‘이익을 노리는 것은 상놈이 할 일이지.’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한평생 법 없이도 잘 사셨을 아버지의 사회의식이다.
서양의 계급 정당이 우리나라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의식의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개인,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개인과 개체는 다르다. 개체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인간이다. 개인은 자신의 삶을 창조해가며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인간이다.
개인은 한평생 매순간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인간이다. 그에게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사회에 이런 인간형이 주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희망은 이런 인간의 탄생에 있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개인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물질 위주의 사회여서 그들은 자칫 개체가 되기 쉽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그들이 개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다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 백석,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부분
우리의 옛 마을에 왜 이리도 귀신이 많았을까? 신은 인간사회의 거울이다. 그 당시 사회에 무서운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은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신과 인간은 다정하게 함께 살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신들이 인간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인간 위의 인간이 생겨나면서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