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넘어서

by 고석근

선악을 넘어서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남들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거네.〔......〕세상에그렇게틀에박은듯한나쁜사람이있을 리없지.평소에는다들착한사람들이네.다들적어도평범한사람들이지.그런데막상어떤일이닥치면갑자기악인으로변하니까무서운 거네.그래서방심할수 없는 거지


- 나쓰메 소세키,『마음』에서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선악’을 알게 인간의 원죄는 너무나 컸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고, 한평생을 노동의 고통 속에 보내게 되었다.


원래 하나였던 마음이 ‘선과 악’으로 나눠지면, 인간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악은 마음 깊이 숨어버린다.


마음 깊이 숨은 악은 언제고 밖으로 뛰쳐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선하게 보이던 사람이 어느 상황에 직면하면 한순간에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을 통해 인간의 길을 찾는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숙부의 집에서 살게 되는 주인공, 숙부에게 유산을 빼앗기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 그는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하숙을 한다. 하숙집 딸에게 연정을 느끼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간다. 하지만 함께 하숙하던 친구 K도 하숙집 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질투심에 불타 K를 궁지로 몰아간다. 결국 K는 자살하고 만다. 주인공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도 숙부와 다들 바 없다고 자책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남들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거네.”


선악으로 나눠진 마음은 자신 안의 ‘악’을 남에게 투사하게 된다. 남을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 안의 악을 느끼며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거부하는 악은 실은 사회가 심어준 것이다. 사회의 지배자들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그들이 정한 도덕률일 뿐이다.


마음이 선악으로 나눠지면 세상만사를 둘로 나눠보게 된다. 삶과 죽음, 좋음과 싫음, 귀한 것과 천한 것...... . 지배계급이 통치를 위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에덴동산은 선악이 생기기 이전의 인간 세상이다. 원시공동체사회다. 지배계급이 따로 없었기에 노동은 즐거운 놀이였다. 삶이 신명났기에 죽음조차 크게 의식되지 않았다.


그러다 농경사회가 되며 지배계급이 생기고, 지배계급은 놀고먹으며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노동은 고통이 되고 고통스러운 삶과 더불어 죽음이 생겨났다.


우리는 선악으로 분열된 마음을 하나의 마음으로 통합해야 한다. 노예의 삶에서 주인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원래 인간의 마음은 하나다. 이 마음은 삼라만상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신(神)이고 부처(佛)이고 하늘(天)이고 도(道)다.


이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마음은 선악으로 나눠진다. 생각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해 놓은 언어다. 언어에는 한 시대의 선악이 스며있다.


우리는 평생 천명(天命)을 두려워한 공자처럼,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항상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선악으로 살아가면 잘 산 것 같은데, 삶이 자꾸만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시인 릴케는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을 대하는 법을 노래한다.



중요한 건

모두를 살아 보는 것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부분



우리는 살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선악으로 본다. 선악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이 굴레에서 빠져 나와야 삶의 문제들이 제대로 풀린다. 문제들을 정확히 바라보고 이내 잊어버려야 한다. ‘내면의 참나(神)’가 어느 날 섬광처럼 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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