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 예수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가다 제비집을 보았다. ‘헉!’ 신축 빌라였다. ‘아니? 도심에서 제비집을 보다니!’
나는 처마 밑의 제비집을 눈부시게 쳐다보았다. 어릴 적엔 그리도 흔하게 보았던 제비집이었는데... .
‘몇 십년만인가! 제비집을 본 게?’ 한참을 쳐다보다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데, 다 자라서 떠났는가?’
도심에서 제비집을 짓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제비들을 어리석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건 마땅한 장소만 있으면 집을 짓는 그 근성으로 제비의 생(生)은 대대손손 이어져갈 것이다.
만일 제비가 안전한 장소에서만 집을 짓게 되면, 점점 집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 안전한 곳이 갑자기 위험한 곳으로 바뀌면 어떡하나?
제비들은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위험해도 가능한 모든 곳에 집을 지어야 해! 그래야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있어!
공원에 들어서자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폴폴폴 날아간다. 대다수는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다.
그들은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 것이다. 우리는 비록 죽지만 흙에 떨어진 씨앗들이 우리의 삶을 이어갈 거야!
중요한 건, ‘안전한가? 위험한가?’가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시냇가에 갔다가 물결을 타고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을 보았다.
허연 배를 희번덕거리며 돌멩이 더미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 하지만 그들은 돌멩이 더미 너머로 날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같은 동작만 계속 반복했다. 아마 결국엔 그들은 지쳐 물결을 따라 아래로 떠내려갈 것이다.
그러다 그들은 힘을 얻으면 다시 위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들은 죽음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까지 가는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공원 한 켠에 작은 연못이 있다. ‘아, 오늘도 잠자리가 있구나!’ 장수잠자리 한 마리가 갈댓잎 위로 날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근처에는 연못이 없을 텐데. 그는 이곳에 연못이 있는 줄 알고 날아왔을까?
오랫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게 아닐까? 이 공원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알고 날아온 건 아닐 것이다.
생명은 자신의 힘만큼 뻗어간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생명의 힘이 있을 것이다. 가끔 내 안에서 꿈틀대는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바로 생명의 힘일 것이다. 생명의 힘을 느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시인 발레리는 일찍이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인간이 잔혹해진 건, 약 2500여 년 전이다. 철기의 발명이다. 석기, 청동기를 사용하던 인류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했다.
그러다 철제 농기구, 무기가 발명되면서 다른 부족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때 지구 곳곳에 성현(聖賢)들이 등장했다. 소유가 생겨나면서 함께 생겨난 인간의 자아(自我 ego), 이 자아는 끝없는 탐욕에 빠져들었다.
모든 성현들은 ‘자아를 죽여라!’는 가르침을 줬다. ‘자아는 허상이다. 진짜 너는 자기(自己 self)다.’
이 시대를 ‘축의 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정신의 중심, 축이 만들어진 시대라는 것이다.
우리는 길을 잃을 때마다, 정신의 축을 찾아야 한다. 자아는 무작정 앞으로만 가기 때문이다.
철기시대 이후 인간 세상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된 것은, 자아 때문이다. 자아는 자신밖에 모른다.
인간은 자아에 가려 자신 안에 있는 진정한 자신, 자기를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생명 그 자체, 자기가 아기처럼 방긋 웃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죽어도 지켜야 할 생명, 자기가 있다. 자기가 깨어나면, 죽을 때까지 물결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힘을 회복할 수 있다.
생지옥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다. 이 힘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시류(時流)에 따라 살아간다.
우리는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 사즉생(死卽生), 자아를 죽여야 생명의 길이 열린다.
접시 속 낙지의 몸이
사방으로 기어나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
몸은 힘차다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
무궁무진 하다는 듯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
몸뿐이라는 듯
- 조은, <낙지> 부분
시인은 접시 속 낙지의 몸을 보며 영생(永生)을 본다. 죽어도 죽지 않는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