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by 고석근

선택


인생이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 - 장 폴 사르트르



보이스 피싱에 연루된 한 대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그 대학생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니? 그것도 흉악한 보이스 피싱에...... .’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언행에 선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


하지만 선악은 어떤 상황에서 선악이 있지, 어떤 언행 그 자체가 선악은 아니다. 아마 그는 취업한 회사(혹은 알바)에서 통장을 요구했을 것이다.


회사가 통장을 제출하라고 해서 제출했을 테고, 그의 행동 어느 것도 악한 행동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통장이 보이스 피싱에 이용되는 순간, 그는 공범이 되어버렸다. 모든 게 그렇다.


물은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만 물을 목마른 사람이 마시면 선이 되지만, 잠 자는 사람의 코에 부으면 악이 된다.


그 대학생은 오랫동안 어떤 교육을 받아왔을까? 어떤 행위에 대해서 ‘하라, 하지 말라’고 배웠을 것이다.


어떤 행위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살인도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선이 되겠지만, 평상시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이다.


그 대학생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와 연관되어 있는 선악에 대해 깊이 사유해 왔을까?


그 대학생이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며 살아왔다면, 그는 회사에서 통장을 요구할 때 깊이 사고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착하게 살아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라났다. 그 대학생도 그 가르침을 성실히 수행했을 것이다.


평소에 나쁜 짓도 하고 살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하게 살아왔기에 양심의 가책 앞에서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어릴 적에 자주 듣던 우스개. 소도둑이 잡혀왔는데, 그는 원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더란다.


자신은 새끼줄을 주워 온 것뿐이란다. 그 새끼줄 끝에 소코뚜레가 꿰어져 있는 건 미처 보지 못했단다.


일본의 한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군인은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그는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했을 뿐일 것이다.


그 원자폭탄을 발명한 과학자는 죄가 없는가? 그 과학자는 치열한 노력 끝에 원자폭탄의 원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죄인가? 그의 발명품이 전쟁과 연결되어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는데?


소매치기들은 바람잡이와 함께 소매치기를 한다. 길 가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바람잡이.


그의 친절에 감동되어 마음이 느슨해졌을 때, 다가온 소매치기들.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바람잡이는 무죄인가? 낯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 죄인가? 친절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떤 행위와 연결되었느냐에 의해 친절의 선악이 결정된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쉽게 범인이 될 수 있다.


삶은 선택이다. 선택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삶은 깊이 생각하여 선택하고,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주인은 나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언행을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선과 악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삶 전체가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최영미, <행복론> 부분



시인은 현대인들의 ‘행복론’을 슬프게 노래하고 있다.


다들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묵묵히 세상의 가르침대로 살아왔기에, 탄식한다.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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