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神話)

by 고석근

신화(神話)


신화는 우리에게 현상계 너머에 있는 초월성을 가리켜 보인다. 신화의 인물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원과 호를 그릴 때 사용하는 컴퍼스처럼 한 다리는 시간의 영역에, 또 한 다리는 영원에 걸치고 있다. - 조셉 캠벨



우리는 어떤 사람의 위대한 업적을 말할 때, 신화라는 말을 쓴다. 그 사람이 했지만, 신적이 어떤 힘이 그 사람을 통해 위업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시인들은 사냥을 할 때, 신적인 어떤 힘이 자신과 함께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신화 속에 살았다.


자신만의 자잘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에는 신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행위는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기(氣에너지)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존재다.

물질도 에너지의 다른 모습이지만, 물질인 육체에만 집착하는 행위는 ‘인간적인 행위’가 아니다.


인간적인 행위는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통일된 행위가 신화적인 행위다.


인간의 집단무의식에는 인류의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이것을 심층심리학자 융은 원형이라고 한다.


인간의 위대한 행위들은 원형들의 현현이다. 따라서 자아를 넘어서는 행위는 신화가 된다.


‘월드 컵’ 때 입은 붉은 티에 새겨진 악마, 전쟁의 신 치우 천황이다. 우리는 한순간에 치우천황이 되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영웅적인 행위를 할 때, 우리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 그런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항상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신화는 우리에게 현상계 너머에 있는 초월성을 가리켜 보인다... 컴퍼스처럼 한 다리는 시간의 영역에, 또 한 다리는 영원에 걸치고 있다.’


현대인이 삶에 지치는 것은, 자신 안의 원형을 깨우지 못하고 자아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존재를 자아로만 평가한다. 어떤 일을 하지? 연봉은 얼마지? 어느 지역에 살지? 어떤 집에 살지?


이런 외적인 가치만으로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 사회에서는 인간의 깊은 내면의 가치들이 깨어나지 않는다.

어떤 큰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만 신화라는 말을 붙일 때, 대다수 사람들은 비신화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영원과 연결되지 않는 단순반복의 행위만 하는 현대인. 항상 허탈하다. 우울과 권태의 늪에 빠진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신화학자 캠벨은 바울의 의식은 ‘또한 붓다의 의식이며, 그 의식은 이 세상 만물이며 또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캠벨은 신화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희열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희열은 내안에서 솟아올라오는 기쁨,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을 말한다.


캠벨은 ‘희열을 따라가면, 우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길을 인도하는 신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희열을 따라가면 처음에는 낮은 차원의 쾌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츰 쾌락은 고차원으로 올라가고 나중에는, 안에서 솟아올라오는 희열을 만나게 된다.


그 희열을 따라갈 때, 자신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화적 삶은 영원에 닿는다. 나의 삶이면서 동시에 천지자연(큰 나)의 삶이기에.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나비 한 마리를 봐도 영원한 나비를 본다. 바람 한 줄기도 영원의 바람이 아닌가?


모든 삼라만상의 삶, 찰나가 영원인 삶이다. 인간도 신화적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천지자연의 일원이 된다.



이글이글, 땅 속에 용암으로 녹아 있는 너,

두둥실 하늘 높이 해가 되어 떠다니는 너,


빨간 장미밭에 춤추는 나비처럼

우리는 불 속을 헤엄쳐 다니며 산다.

너를 마셔 내 가슴속에도 불,

때로는 너무 뜨거워

눈물로 달래기도 한단다.


- 이원수, <불에 대하여> 부분



시인은 불을 관찰한다. ‘이글이글, 땅 속에 용암으로 녹아 있는 너,/ 두둥실 하늘 높이 해가 되어 떠다니는 너,’


그러다 ‘우리는 불 속을 헤엄쳐 다니며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의 신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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