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by 고석근

소송


얼굴 흰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살펴보면 볼수록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이 법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문명사회의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에 구속되면 될수록 그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아진다.- 크리크 족의 토모치치 추장



몇 년 전에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러 갔다. 아마 평소에 다들 소송에 대한 공포가 있어 그 영화에 열광했을 것 같다.


그 영화에서는 멋진 변호인이 억울하게 기소당한 피고인들을 변호해 주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사례가 얼마나 될까?


자라면서 억울한 일을 가끔 겪었다. 그때마다 공포감이 밀려왔다. ‘법을 잘 지켰는가? 어겼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집행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걸까? 교도소에 갇힌 많은 죄수들이 자신들의 죄와 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문명사회의 법, 규범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인디언 크리크 족의 토모치치 추장은 말한다. “얼굴 흰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살펴보면 볼수록... 법이라고 부르는 것...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에 구속되면 될수록 그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아진다.”


인디언들은 부족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었기에, 문명사회 같은 사법기관이나 법의 전문가는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마을과 유사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 마을의 구성원들이 법, 규범을 어기면 마을 공동체에 의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대체로 법, 규범을 정당하게 집행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서로의 삶을 훤히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처벌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그러다 우리 사회도 문명화되면서 공동체 마을은 사라지고, 도시가 형성되면서 근대의 사법기구가 생겨났다.


근대의 사법제도는 법의 전문가들이 법집행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해 심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의 행위만으로 심판하는 게 정당할까? 평소에 성실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한순간의 잘못으로 한평생 전과자가 되어 이웃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행위를 심판하려면 그 사람의 전 인생을 알아야 할 텐데, 현대문명사회의 사법제도에서 그게 가능할까?


직접민주주의 꽃을 피웠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한 평범한 시민이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나타난 남자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어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보여준다.


오래 전 교직에 있을 때였다. 우리 반의 한 학생이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여러 학생들이 한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 학생의 씀씀이가 요즘 부쩍 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학생을 불러 그 학생이 상처받지 않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정황상 그 학생이 범인 같았다. 하지만 그 학생의 부모가 강하게 항의를 하고 그 절도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 교사가 경찰, 검사, 재판관이 되어야 했을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남의 돈이나 물건을 훔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법에 따라 처벌해야 맞을까?


문명사회 같은 큰 사회단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에 적은 국민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서로의 삶을 훤히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큰 사회가 되어 익명이 되면, 사람들 속의 짐승이 수시로 올라올 수 있다.


그런 잘못들을 일일이 법의 이름으로 처단할 수 있을까? 처단하는 것이 좋은 사회를 위해 필요충분조건일까?


인간에겐 서로를 사랑하는 힘이 있는데, 이 힘보다는 법이 위에 서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황폐화될 것이다.


모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하며 더불어 살았던 옛 마을이 간절히 그립다.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도 걸려서 산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려 가는 사람이 있어도 개는 짖는다

김치 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나게 익는 밤

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려 가면 나는 큰마니 돋보기를 쓰고 앉아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 백석, <개> 부분



나도 어릴 적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안심하고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개는 우리의 깨어있는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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