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by 고석근

죽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환상을무서워하는 것, 즉 없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과 같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배를 타러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 공안경찰들이 다가왔다. 한 공안경찰이 우리들을 죽 훑어보더니 내게 시선을 꽂았다.


“당신, 사유하는 사람 같아.” 공안경찰들이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취조실에 갔더니 고등학교 친구 ㅇ도 조사를 받고 있다.


공안경찰이 말했다. “ㅅ 학자에게 가 보세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가르쳐 줄 겁니다. 여기 그 분의 주소가 있으니 적으세요.”


나는 종이에 주소를 적으려 하는데, 종이의 여백이 적어 여기 저기 적다보니 주소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다시 사정을 해서 백지 한 장을 얻었다. ㅇ이 나를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여유 있게 씩 웃어주었다. ‘아,


그런데 이러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 아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 텐데.’


나는 긴장하며 백지에 또박 또박 주소를 적으려 하는데, ㅅ 학자의 주소가 다른 글자들과 섞여 있다.


‘아,’ 마구 뒤섞여 있는 서류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데... 환하게 빛이 들어왔다. ‘헉!’ 꿈이었다.


나는 이런 악몽을 자주 꾼다. 어디 가서 곤경에 처해 돌아오지 못하는 꿈들이다. 뭔가가 뒤죽박죽이 되어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꿈을 깬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이다. 아마 죽음이 이럴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꿈도 한순간에 끝나버릴 것이다.


그럼 인생을 막 살아도 될까? 죽으면 끝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제자에게는 석가는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나는 50대 초반에 죽음을 체험한 적이 있다. 깊은 밤에 깨어나 죽음에 임박했음을 알았는데, 육체는 최후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나는 평온했다.


죽음의 공포는 아예 없었다. 사후 걱정도 전혀 하지 않았다. 희미한 생의 에너지만 남은 몸은 약하디 약했다.


두려움도 에너지가 있을 때의 얘기다. 생각은 허공을 떠도는 공기처럼 가벼웠다. 곁에 자는 아내가 걱정되었다.


‘지금 죽어가는 나를 보면 놀랄 거야. 내일 아침에 죽어 있는 나를 보는 게 더 나을 거야.’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천당, 극락, 지옥, 심판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난날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카르페 디엠(현재를 잡아라)’이었다.


잔잔한 명상 상태였다. 그때 진짜 죽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임사체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환한 빛이 나타났을 것 같다.


육체를 벗어나 허공의 세계로 들어갔을 테니까. 확실한 것은 죽음은 삶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죽으면 끝이니 막 살아도 문제가 안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왜 굳이 막 살아가려고 하세요?”


평소에 잘 산 사람은 죽을 때도 훌륭하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태어난 인생, 잘 살다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아이들을 보면 어느 순간에도 즐겁게 산다. 그들에게는 항상 살아 있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그 아이의 마음이 우리의 타고난 마음일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죽음은 일상의 삶 이상이 아니니까 두려워하지도 말고, 바라지도 말고, 매 순간 아이의 마음으로 사는 게 최고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주 악몽을 꾸는 나의 깊은 무의식에는 이승에서 풀지 못한 무언가 큰 한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오면 그 한도 끝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한을 풀지 못하면 내 삶은 지리멸렬할 것이다. 내 삶을 위해 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불에 타면서 나는 당신을 본다
내 뼈는 하얗고 가볍다
당신의 혀 위에서 녹겠지
마약처럼


- 다니카와 슌타로, <죽음> 부분



우리는 평소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죽음이라는 게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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