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by 고석근

나의 길


그대 앞에 놓인 길이 분명히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다른 사람의 길일 것이다. - 조셉 캠벨



초등학교 3학년 때쯤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큰 결심을 했다. ‘나는 우리 가문을 일으킬 거야!’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한문으로 된 고서들이 그득했다. 그런데 왜 장남인 아버지는 한글도 모르실까? 왜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을까?


나는 몰락한 우리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였다.


나는 장남으로서 아우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서울 마포에서 양복점을 하는 사촌형에게 보내려했다.


어머니는 내게 가끔 말씀하셨다. “양복점에서 일하면 명절날 양복을 입고 고향에 올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철도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걸어갔던 나의 길들은 내 앞에 분명히 보이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드디어 어머니의 꿈, 월급쟁이(화이트칼라)가 된 것이다.


그러다 30대 중반, 내가 가던 길이 눈앞에서 문득 끊어졌다. 천 길 낭떠러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왜 이렇게 되었지? 분명하게 보이던 길이 어떻게 된 거야?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다. “그대 앞에 놓인 길이 분명히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다른 사람의 길일 것이다.”

그 뒤 오랜 방황이 시작되었다. ‘나의 길’ 찾기의 긴 여정이었다. 문학 공부를 할 때 신경림 시인의 글에서 ‘길이 끊어진 곳에서 문득 길이 시작되고’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십여 년을 방황하다 ‘문득 길이 시작되는’ 기적을 맛보았다. 내 앞에 분명히 보이는 길이 아니었다.


안개 속을 헤쳐 나가야하는 길이었다. 나의 희열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내 안에서 가라고 하는 길. 내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30대 중반에 길을 찾아 떠났을 때는 내가 앞으로 인문학을 강의하고 글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욕망으로 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알 수 있을까? 해보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자유인으로 살면서 기회가 오는 일들을 마다않고 해보았다. 처음에는 신이 났으나 갈수록 시들해지는 것들이 많았다.


많은 현자들이 10년을 지치지 않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면, 그 길은 자신이 가야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자신의 열정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돈이 따라온다고 했다. 내 경험상 100% 맞는 말이다.


내 안의 희열이 가라는 곳으로 가면 먹고 사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다. 묘하게 운이 따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나요?” 나는 걱정하지 말고 가보라고 말한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문득 길이 시작될 거라고.


인간과 천지만물은 하나의 기(氣)로 연결되어 있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천지만물이 조응하게 되어 있다.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면서

으스러지면서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부분



나무는 ‘으스러지면서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아아 마침내, 끝끝내’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우리도 온몸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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