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浩然之氣)

by 고석근

호연지기(浩然之氣)


불의 따위는 결코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본령이 있은 후에야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맹자



공자가 말한 인생의 3가지 즐거움 중 하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던가?’


나는 오랫동안 공자의 이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 속에서 존재감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단지 밥을 먹고 숨만 쉬고 산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다.


공자는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상당히 뛰어난 인간임을. 그런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이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인가?


그도 분명히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화보다 더 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군자의 즐거움, 자신의 길을 가는 즐거움이다. 그는 평생 ‘천명(天命)’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는 천명이 자신의 ‘본성(本性)’속에 있다고 했다. 하늘(신)의 명령이 자신의 타고난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가 가라고 하는 길을 갔을 것이다.


천지자연이 가라고 하는 길, 한 인간이 그 길을 갈 때, 그는 당당해진다. 천하 앞에서 당당한 즐거움, 바로 군자의 즐거움이다.


이것을 맹자는 호연지기라고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가 자신 안에 가득 차있는 느낌.


그는 말했다. “호연지기는 의(義)를 행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무언가 불쾌한 것이 있으면, 이것은 곧 시들어지게 된단다.”


인간에게는 ‘쾌와 불쾌’를 아는 타고난 마음이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쾌감을 느끼고,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


공자가 하늘의 명령을 따르는 길, 아름다운 길이오, 올바른 길이오, 쾌감이 오는 길이다.


아마 그 당시 공자와 같은 길을 갔던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들도 군자의 길을 가는 즐거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이 세상이 이리도 혼란스러운 것은,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을 위한 싸움,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말한 ‘인정투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화두도 정의, 공정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군자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어느 분야나 ‘줄’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신이 가는 분야의 대가 뒤에 줄을 서 있으면, 많은 기회들이 쉽게 온다.


그러다보니 줄을 잡으려는 투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 ‘시장’이 또한 중요하다.


줄이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면, 유명해지는 것이다. 갑자기 혜성처럼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중에는 이 시대가 간절히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 영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정 투쟁의 장은 ‘줄과 시장’의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진흙 속에서 옥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는 시대다.


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들이 있을 것이다. 묵묵히 군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은 즐거움 속에서 무명(無名)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죽을 때 멋진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평생 군자의 길을 갔기에, 가을에 나뭇잎이 땅으로 툭 떨어지듯 자신의 생명줄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 군자의 길을 엿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무지 기쁘다. 이제서야 귀가 순하게 열리는 것 같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왕궁) 대신에 王宮(왕궁)의 음탕 대신에

五十(오십)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二十(이십)원 때문에 十(십)원 때문에 一(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날 古宮(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시인은 한탄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그래서 그는 결국 우리 역사의 절정 위에 서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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