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
자연계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결국 우리의 행복에서 등을 돌리는 것과 같다. - 사무엘 존슨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던 부부가 생후 석 달된 아이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요즘 이런 ‘게임중독사건’이 빈번하게 터지고 있다. 그때마다 TV, 신문에서는 그 모든 죄를 ‘게임중독’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게임중독자들’은 스스로의 죄를 아는지 아무 말도 없다. 이러다 시간이 지나가면 곧 조용해질 테고, ‘게임중독사고’가 나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이 모든 죄가 인터넷게임에 있을까? 강의 다니다 보면 수강생들이 자주 질문을 한다. ‘우리 아이가 너무 게임을 좋아합니다. 어떡하면 좋죠?’ 그때마다 나는 길게 답변을 한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데, 그렇다면 엄청난 국민들이 인터넷 게임을 한다는 얘긴데, 그 많은 게임중독들에 대해 어떻게 몇 마디로 처방책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세 살이 되었을 때 시골로 이사를 갔다. 도시는 아이가 자라기에 부적합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시는 시계 침을 따라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인다.
따라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 기계의 부품이 되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어린 아이가 이런 움직임에 따라 자라게 되면 여러 정신적인 발달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시골로 이사를 갈 때쯤 처음으로 게임기가 나왔다. 큰 아이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했는지 게임기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서울 중앙시장에 가서 게임기를 사다 주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다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겐 스스로 좋은 것을 선택해가는 힘이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했다. 아이들은 게임에 열광을 했다. 하지만 이웃집 아이가 놀자고 부르면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시골에는 놀 곳과 놀게 널려 있었다.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익도록 놀다 해가 져서야 돌아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시골에 이사 온 목적이 바로 이거야!’
우리가 이사 간 곳은 분교가 있는 산골짜기라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았다. 함께 놀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하교 길에도 함께 왔다. 오다가 길가에서 벌레라도 보면 쪼그려 앉아 한참동안 구경하다 일어섰다.
아이들이 게임만 좋아한다고? 그건 모르는 말이다. 아이들은 이 거대한 자연을 더 좋아한다. 그 속에 있게 하지 않았기에 게임밖에 좋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삶, 그 속에서 아이들이 느긋하게 책을 읽고 사색을 할 수 있겠는가? 빡빡한 삶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아이들은 ‘느리게’ 살아 봐야 한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놀기도 하고,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들판에 피어난 들꽃들의 향기도 맡아봐야 한다. 그렇게 자라야 아이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게 된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는 절대 게임, 도박 같은 데 빠지지 않는다. 한 곳에 중독되기엔 인생이 너무나 풍부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
이 신나는 인생에 빈약해진 감수성으로 겨우 게임이나 하며 인생을 탕진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 아이들은 이제 20대가 되었다. ‘엄친아’는 아니지만 즐겁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만일 도시에서 남들처럼 길렀다면 ‘엄친아’ 비슷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게임중독사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이 세상에 태어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인생만큼 불쌍한 게 어디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죄를 게임에 뒤집어씌우지는 말자.
어릴 적에 감수성을 길러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얘기하자. 우리 주변에 감수성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사회 환경을 얘기하자. 게임중독 사고들을 마녀 사냥하듯이 하면 이런 사고들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인간은 결코 게임에 빠지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영혼이 있는 우주적 존재다.
지금 막 심장에 도착했어
뼈 하나를 지났다구
간을 지나
콩팥을 지나
갈 거야, 너의 피로
그림자가 오면 그림자를 기대게 하면서
눈물이 오면 눈물을 기대게 하면서
바람이 오면 바람을 기대게 하면서
- 강은교,《23층의 햇빛》부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산골짜기에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우리가 감수성만 깨운다면 도심에서도 자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