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친(父子有親)

by 고석근

부자유친(父子有親)


근본적으로 신(神)은 높이 승격된 아버지에 불과하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나는 어린 우리 아들들과 참으로 친하게 지냈다.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일화들이 많다.


어릴 땐 모든 아이들은 다 천재다. 언어를 제대로 익히기 전이라 세상이 말갛게 보인다.


아이들이 그 말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말하기만 하면, 어른들에겐 놀라운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 언어를 배우면서, 세상에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언어로 보는 삼라만상은 고유의 빛과 향을 잃어버린다.


세상이 신기하지 않게 되면서 사는 게 시들해진다. 아이의 마음을 고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늘 ‘천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자녀는 인생 최대의 선물일 것이다. 우리 안의 아이를 다시 깨워주니까. 한동안 우리는 천국에서 산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아버지들은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아들은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어 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게 하고 싶어 한다.


두 세계의 ‘목숨을 건 싸움’이다. 이 때 아버지가 잘해야 한다. 세상은 늘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계속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왔다. 기존의 세계의 수호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들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어야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거대한 천지창조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 차원의 신의 싸움이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가듯 그렇게 져야 한다.


죽어야 사는 것이다. 아들의 세계와 하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천지자연은 언제나 죽어가면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원시사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없었다. 아들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다.


나이 13세가 되면 가혹한 성인식을 한다. 며칠 동안 죽음의 고비까지 가게 한다. ‘의존하는 아이’는 죽게 된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다. 이제 당당한 부족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공자가 말하는 부자유친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하지만 문명사회에서는 성인식을 하지 않는다.


아들은 계속 아들이 된다. 자신을 책임지지 않고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다 큰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여자 아이들은 성인식이 가혹하지 않다고 한다. 생리를 시작 할 무렵, 딸을 헛간에서 조용히 지내게 한다고 한다.


자신이 여자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 딸은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으며 어머니가 되니까.


그럼 문명사회에서 부자가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원시인들처럼 서로 동등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한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가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은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천륜이다. 각자의 몸은 사라져도 영원히 서로의 존재를 이어가는 관계다.



아아 자연이여

아버지여

나를 홀로 서게 한 광대한 아버지여

나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지켜주도록 하라

언제나 아버지의 기백이 내게 넘치게 하라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하여


- 다카무라 고타로, <도정> 부분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세상이다. 지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게 하는 신이다.

keyword
이전 25화군계일학(群鷄一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