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재가(修身齊家)
가족이여, 폐쇄된 가정이여. 나는 너를 증오한다. - 앙드레 지드
유교의 경전 ‘대학’에서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든다.
‘자신의 몸을 갈고 닦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경영하라’는 것이다.
가끔 언론매체에서 접한다. “가정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공자도 가정은 잘 다스리지 못했다(열자)’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왜 공자는 지금까지 유교의 교조로,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을까?
수신재가에서 말하는 가(家)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가정, 부부중심의 핵가족이 아니라 ‘가문(家門)’이다.
산업사회 이전까지의 봉건제 사회에서는 가문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단위였다. 가문이 모여 나라가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가정과 가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 사회의 중요한 국가의 단위는 여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단체들이다.
수신재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몸을 갈고 닦아 자신이 속한 단체, 조직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국가와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의 기본 단위는 흔히 가정이라고 하는데 가정이 아니라 ‘개인’이다. 현대산업사회는 중세사회의 기본단위 가문을 해체시키고 등장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가정은 개인과 개인이 만나 이루는 부부중심의 가정이다. 자녀들이 태어나도 각자 개인이 중요하다.
현대의 가정은 봉건시대의 가문처럼 평생 개인을 책임지지 않는다. 자녀도 미성년일 때만 보호를 받지 성인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지도자 자격이 있을까? 우리는 그가 속한 단체, 직장을 봐야 한다.
그가 속한 정당, 사회단체, 직장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는가? 작은 단위나 큰 단위나 경영의 원리는 같다.
마을의 이장, 사회단체의 지도자 역할을 잘하는 사람은 면장, 군수, 시장을 잘 할 수 있다. 군수, 시장을 잘하는 사람은 국회의원, 대통령도 잘 할 수 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경력으로는 지도력이 검증되지 않는다. 현대의 일가친척은 어떤가?
이제 일가친척은 예전의 가문이 아니다. 각자 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봉건의식이 남아 잘나가는 형제자매, 일가친척에게 의존하려 한다.
이러한 가정, 일가친척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잘 다스릴 필요가 있을까?
그럼 아예 가정을 버리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도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면 국가,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기본 정신은 ‘자신을 갈고 닦고, 자신이 속한 단체 조직을 잘 다스리느냐?’를 묻는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철기가 등장하며, 기존의 작은 국가 단위가 무너지고 대제국이 형성되어 가던 시대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시대에 공자가 자신을 갈고 닦고 가정에만 안주할 수 있었을까?
공자는 작은 단위의 국가를 넘어서는 대제국의 새로운 윤리를 제창했던 것이다. 전쟁통에 무너진 가문을 바로 세우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자신의 가정을 잘 꾸릴 겨를이 있었겠는가?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 국가 단위를 넘어서서 ‘세계 국가’가 세워져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을 갈고 닦고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이런 시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각자의 개성이 중요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홀로와 함께’ 잘 해낼 수 있는 인간, 우리는 이런 사람을 국가와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기본 조건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1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우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 문정희, <찬밥> 부분
얼마 전에 들은 얘기다. 한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말했단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씩씩대며 할머니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말하더란다.
할머니가 더 이상 ‘찬밥’으로 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나는 ‘화목한 가족’을 믿지 않는다. 대체로 주부가 오랫동안 찬밥이 되어온 집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