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동진(和光同塵)

by 고석근

화광동진(和光同塵)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담을 달리 생각해보면, 어떤 뛰어난 재주가 한 인간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나무 타는 재주가 아예 없으면 나무에서 떨어질 일이 없을 텐데, 나무 타는 재주가 있어 원숭이는 불구가 되거나 비명횡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곧게 잘 자란 나무는 그 잘 자란 것 때문에 천수를 다하기 전에 베이고 만다. 담비는 그 멋진 가죽 때문에 일찍 잡혀 죽어야 한다.


오리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보드라운 솜털 때문에 산채로 털이 뽑혀 추울 겨울을 벌벌 떨며 견뎌야 한다.


인간 세상에는 모든 것이 두 개로 나눠진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잘난 것과 못난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

해충이라고 항상 박멸대상이 되는 파리는 무슨 죗값을 받고 있는 건가? 파리가 해충이 되면, 파리 목숨이 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노자는 일찍이 말했다. “불상현(不尙賢) 사민부쟁(使民不爭),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세상이 훌륭하다고 숭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잘 생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숭상을 받는 동안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다 ‘루저(패배자)’가 되어버린다.


그들은 한평생 못난이가 되어 살아야 한다. 이 못난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누가 봐도 부당한데?


산에서 보는 자연, 참으로 아름답다. 다 잘났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지렁이의 길을 갈 뿐, 다람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각자 자신의 생명을 만끽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재주가 특별대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세상만 어떤 특정한 재주를 칭송한다. 공부 잘하는 것, 잘 달리는 것, 헤엄을 잘 치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것...... 등등.


그런 재주를 타고 나지 못하면, 그런 재주를 키워 줄 ‘부모찬스’가 없으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된다.

인간 세상에 정말 필요한 재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 세상에 공부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건가?


노숙자 중에 공부를 못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 한 가지 재주로 잘 살아가던 사람은 그 재주의 쓰임새가 없어지면 폭 망한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다 계발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어떤 재주만 숭상하니 그런 재주들만 계발이 된다.


다 기형이 된다. 기형이 된 인간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엽기와 변태가 판을 치게 된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음양(陰陽)의 조화다. 달이 차면 기울어지고, 다 자란 나무는 조만간 쇠하게 되어 있다.


어떤 재주로 잘 살아가는 사람은 조만간 그 재주로 인해 잘 살아가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화광동진, 빛(光)을 부드럽게(和) 해 속세의 티끌(塵)과 같이(同)한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속세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라’는 노자의 가르침이다.


재능이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니, 그 재주를 숨기고 살아야 이생망을 피할 수 있다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아가면, 서로 싸울 일이 없어져 이 세상은 사랑 가득한 지상 낙원이 될 것이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부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탄식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는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일찍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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