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惻隱之心)

by 고석근

측은지심(惻隱之心)


아름다움이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리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맹자는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지심 不忍之心)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갑자기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순간적으로 본다면, 모두 두려워 놀라고 안타까워(惻隱)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 마음은) 어린아이의 부모를 내밀하게 사귀려는 까닭이 아니며, 고을 붕당과 친구들에게 칭찬이 필요한 까닭도 아니고, 그 소리가 나는 것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쳐가는 경우가 무수히 많지 않은가?


맹자가 말하듯이 우리의 타고난 본성(本性)에는 분명히 측은지심,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텐데.


인간의 마음에는 이 측은지심과 달리,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도 있다.


인간의 마음은 크게 보면,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진다. 맹자가 말하는 본성은 무의식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마음을 계발하지 않으면, 의식에서는 희미하게 느껴져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마음, 의식에는 ‘자아’가 있다. 자아는 자신부터 챙기려한다. 근대산업사회는 인간의 자아를 중시한다.


근대 이후의 산업사회에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아가 인간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자아는 깊은 무의식의 본성의 소리를 외면할 수가 있다.


서양의 근대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는 이러한 근대의 ‘이성적 인간’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이성적 인간은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보고는 이성적 판단부터 할 것이다. ‘저 아이를 도와주다가는 내가 위험할 수 있어. 위험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나는 어디에 급히 가는 길이잖아.’


그의 내면에서는 당연히 아이를 도와주라는 소리가 들리겠지만, 그 소리는 이성에 이해 억눌러질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의 훈련을 철저히 받는 현대인. 어떻게 선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인간은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데.


칸트가 찾아낸 게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마음을 타고난다.


맹자가 말하는 불인지심과 같다. 인간은 더러운 행동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유다.


칸트가 발견한 미적 인간은 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나타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지옥에 끌려갈 줄 뻔히 알면서도, 외친다.


“시간이여 멈춰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 순간,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의 혼을 구원해 준다.

파우스트는 많은 방황과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 앞에서 지옥 불조차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중요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술은 이제 과거의 종교가 하던 역할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적인 교육이 중심이 되어왔다. 단편적인 지식 위주의 우리 교육은 얼마나 위험한가!


우리의 교육은 이제 지식 중심의 교육에서 예술 중심의 교육으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은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만이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찬 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

배배 말라가면서

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윤중호, <시래기> 부분



시인은 줄에 걸려 배배 말라가는 시래기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본다.


이런 마음이 시인에게만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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