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독존(唯我獨尊)

by 고석근

유아독존(唯我獨尊)


타인은 지옥이다. - 장 폴 사르트르



TV 드라마 ‘신병’에서 한 신병이 전입했다. 목소리가 가늘고 작다. 또한 불분명하다. 행동도 굼뜨다.


다들 의아해한다. “저런 애가 어떻게 군대에 왔어? 훈련소에서 귀가조치 안하나?” 그는 그런 말들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침대 끝에 꼿꼿이 앉아 있다.


언뜻 봐도 지적 장애인처럼 보인다. ‘아참, 안 됐네.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동정심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연극이었다. 그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진다. 한 선임이 그가 다른 구역까지 가서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하는 소리를 엿 듣는다. ‘멀쩡하잖아.’


다음 날, 그 신병의 ‘마음의 편지’로 인해 한 선임은 영창에 가고, 분대장은 중대장에게 혼이 난다.


분대장은 분기탱천한다. “내가 그에게 폭언, 폭행을 했다고? 언제?” 분대장은 분대원들을 소집한다.


그 신병의 전화 목소리를 녹음하자는 의견이 제시된다. 간부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어떻게 구하지?


분대원들의 기민한 일치단결된 행동으로 그의 정체가 다 드러난다. 그는 군대에 오기 전에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일종의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극에 속을까? 나는 100% 믿었던 사람들에게 여러 번 당하며 그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을 볼 줄 몰라서다. 자신의 선입견으로 사람을 봐서 그렇다. ‘저렇게 바보 같이 생긴 사람이? 시를 쓰는 사람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교육자가? 성직자가?’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쉽다. 우리의 타고나는 마음에는 진선미(眞善美)를 아는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심히 어떤 사람을 바라보면, 우리 안에서 들려온다.


‘뭔가 께름칙해!’ 혹은 ‘믿어도 돼!’ 우리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진다. 의식은 우리가 아는 마음이라 쉽게 알 수 있는데, 무의식은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야 아주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의식의 마음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의식은 우리의 진짜 마음이 아니다.


진짜 마음은 무의식에 있다. 무의식의 마음을 꾸준히 계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쉽게 당한다.


“인간이 싫어!”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야!”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한평생 이기주의자, 냉소주의자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엄마 품에 있을 적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배가 고파도 울음소리를 낼 뿐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는 아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아기는 ‘전지전능감(全知全能感)’에 갖게 된다.


아기는 생각한다. ‘아, 내가 원하기만 하면 즉각 다 이루어지는구나!’ 이 생각이 쌓이고 쌓여 마음에 가득 남아 있으면, 아기는 자라며 ‘유아독존’이 된다.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그 신병은 이 유치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존재, 다른 사람이 없다. 삼라만상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진선미를 아는 마음은 그의 깊은 무의식에 숨겨져 있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밖으로(e) 이끌어내는(duco) 것’이다. 인간의 깊은 무의식에 있는 진리를 알고, 선을 알고, 아름다움을 아는 잠재력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인간은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괴물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


인간은 연극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선미를 계발하는 건,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동물원의 4평 반 진창 안에서는.

다리가 너무 길지 않은가.

목이 너무 길지 않은가.

눈 오는 나라에서 이 상태라면 날개가 너무 너덜너덜하지 않는가.

배가 고프니까 건빵도 먹지만,

타조의 눈은 먼 곳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몹시도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지 않은가.

유리색 바람이 당장이라도 불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작고 소박한 머리가 무한대의 꿈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은가.


- 다카무라 고타로, <너덜너덜한 타조> 부분



인간은 집단적으로 유아독존에 빠져 있다. 어떻게 다른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서로를 자신의 우리에 가두게 된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옥, 지옥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측은지심(惻隱之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