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문도(下士聞道)

by 고석근

하사문도(下士聞道)


철학은 언어를 무기로 하여 우리의 지성에 걸린 주문과 싸우는 전투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중국 송나라에서 화약을 발명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시대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그 화약을 불꽃놀이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화약을 서양은 총기에 사용하여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다. 누가 더 위대한가!


서양이 중국도 누르고, 지구 곳곳을 식민지로 삼았으니, 서양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가?


노자는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을 가진 것. 승인자유력. 勝人者有力.’이라고 했다. 힘을 가져서 남을 윽박지르는 것이 위대한 일인가!


그렇다면 선량한 사람들의 등을 쳐서 먹고사는 동네 양아치가 위대한가! 이런 말이 있다.


‘소 한 마리를 훔치면 도둑이지만, 나라를 훔치면 임금이 된다.’ 양아치와 제국의 차이인가!


최근에 대유행을 일으킨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오로지 힘만이 위대하다고 설파하는 책들이다.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이런 류의 책들을 읽으면 내 안에서 분노가 솟구쳐 올라온다.


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이고 대학생들의 필독서라니! 약육강식, 승자독식, 각자도생.. 을 퍼뜨리는 신자유주의의 경전들이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애벌레로 살아라! 애벌레들의 기둥 저위로 올라가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애벌레들은 과연 안녕한가?


화약을 총기에 사용한 서구의 생활양식은 세계화가 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기후위기로 전 인류가 풍전등화다.


노자는 말했다.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강자다. 자승자강. 自勝者强.” 강자는 최소한 행복해야 되지 않는가?


남을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되면, 자신부터 망가진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힘으로 남을 짓밟는 나라들을 보라! 그 전쟁 영웅들의 말로는 다들 비참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어리석음을 부추기는 책들을 전 인류가 읽고 읽다니! 젊은이들의 필독서로 권장하고 있다니!


노자는 말했다. “뛰어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열심히 행하고, 보통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못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비웃음을 사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상사문도 上士聞道, 근이행지 勤而行之. 중사문도 中士聞道, 약존약망 若存若亡. 하사문도下士聞道, 대소지大笑之. 불소부족이위도不笑不足以爲道, 고건언유지故建言有之.”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노자의 ‘승인자유력. 勝人者有力. 자승자강. 自勝者强.’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크게 비웃을 것이다. ‘못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하사문도下士聞道, 대소지大笑之.’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들 못난 선비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노자의 도(道)라는 게 어려운 것 같아도, 사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눈앞에 빤히 보이는 길이다.

그런데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에 취한 우리에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명품 브랜드가 붙은 책들이 우리 앞에 주어지면 우리는 한순간에, 못난 선비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지성에 주문이 걸려 있다. 이 주문을 풀어야 한다. 어린 아이로 돌아가야 한다. 살기 위해 ‘어른’은 죽어야 한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게 될 것이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다!”



친구여 술이나 드시게.

인정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늙도록 사귄 벗도 칼을 겨누고,

성공한 이도 후배의 앞길을 막나니,

〔......〕

누워서 배불리 지내는 게 제일이지


- 왕유, <배적에게 술을 따르며> 부분



시인은 우리에게 생의 비의를 들려준다. ‘누워서 배불리 지내는 게 제일이지’


그런데 우리는 이제 아무리 먹어도 도무지 배가 부르지 않다. 계속 남의 몸을 잡아먹다 자기 몸뚱이까지 다 뜯어 먹고 이제는 머리만 남은 아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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