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불이(自他不二)

by 고석근

자타불이(自他不二)


사람답게 사는 것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인디언들은 부족 간에 전쟁을 하다 적을 포로로 잡게 되면 그를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포로가 가족이 되다니? 적이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나? 문명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어떤 원시인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게 되면, 그가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를 계속 도와준다고 한다.

옛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게 있다.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에게 이 속담을 비유로 든다.


원시인들과 문명인들 중 누가 더 지혜로운 걸까? 어떤 사회에 살아야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적은 적이야, 가족은 가족이고, 우리는 끝까지 적을 박멸할 거야!” 사람을 적과 동지로 엄격히 나누는 문명인들은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가족이 어느 순간 적이 되어 서로 으르렁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다시는 가족이 되지 않는다. 적은 적이고 가족은 가족이니까. 언제라도 적이 될 수 있는 가족이 안녕할 수 있을까?


인간을 적과 동지로 선명하게 나누는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사고가 났을 때, 도움을 받기가 힘들게 된다.


한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지나가던 트럭이 아내를 치고는 그냥 가버렸단다.


쓰러진 아내 곁에서 남편은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안타까이 손을 흔들어댔지만, 차들은 그냥 씽씽 지나쳐갔단다.


왜? 그들은 가족이 아니니까. 괜히 구조해줬다가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


원시인들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는데, 사고를 당한 사람을 끝까지 구호해준다면 얼마나 좋은가?


서로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신뢰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멀건 대낮에 그런 악몽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쓰러질 것 같은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하지 않았다.


주말 농장에 다녀오느라 온 몸에 흙탕물이 튀어 있고, 얼굴이 노랗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그들은 행려병자로 보는 듯했다.


적과 가족이 선명히 나눠지고,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선명히 나눠지는 사회에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삶의 지침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의 저서 ‘칼의 형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했다면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했던 거나 다름이 없는 거지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고, 그 어떤 사람도 모든 인간이고, 셰익스피어는 일종의 가련한 존 빈센트 문이라는.’


그렇다. 인간은 ‘유적(類的) 존재’다. 인류 전체가 하나인 존재다. 각자 존재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우리는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한 사람을 위하여’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각자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항상 목이 마르다. ‘이 세상 어디엔가는 오마시스가 있을 거야!’


현대인들은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혼자서는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탕스 블루, <사막> 부분



무인도에 조난당한 로빈슨 크루소는 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넣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그를 친구 삼아 지냈다.


사람은 혼자서는 견디지 못한다. 한평생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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