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by 고석근

오래된 미래



중국의 제나라 선왕은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는 소를 몰고 지나가는 걸 봤다. 그에게 물었다.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그가 대답했다. “혼종(釁鐘, 종의 틈에 피를 발라 메우는 제사)을 지내려고 합니다.” 왕이 말했다. “놔 주어라. 그 소가 떨며 죄 없이 사지에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가 물었다. “그러면 혼종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난감해진 왕이 대답했다. “어찌 폐할 수야 있겠느냐? 양(羊)으로 바꾸라.”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지 모른다. ‘아니? 소나 양이나 다 불쌍하지 않나?’


하지만 고대의 현자 맹자는 이 왕의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설명한다. 우는 소를 보고서 측은한 마음이 생겨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우는 소에 대한 측은지심을 지닌 왕, 그래서 맹자는 그에게 말한다. “이러한 마음이면 족히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양에 대한 측은지심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은 공리공담이 될 것이다.


보이는 것에 대한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 인류 중 반만 되어도 이 세상은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장날마다 들에서 가꾼 채소를 읍내에 가져가 좌판을 여셨다. 부모님은 항상 농약을 치는 문제로 고민을 하셨다.


자주 하늘을 보시다 비가 오기 전에 농약을 치셨다. 장날이 되면 빗물로 농약이 깨끗이 씻어진 채소를 장에 갖고 가셨다.


작은 읍이라 채소를 사러 오시는 분들은 거의 다 아는 분들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농약이 묻은 채소를 차마 팔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누구나 이익을 얻고 싶어 한다. 경제학에서는 서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그런 논지를 폈다고 배웠다.


그는 ‘도덕 감정론’을 쓴 윤리학자였다. 그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은 도덕 감정이 있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크게 양심을 벗어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한번 물꼬를 턴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솟아나고 있지 않는가?


이게 인간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온 우주가 망해도 된다는 생각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중심에 둔 사회, 그 욕망을 한없이 부추기는 사회, 현대문명은 욕망이 쌓은 거대한 바벨탑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타고난 본성(本性)이 있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획득된 성격이다.


이 본성에는 맹자가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 감정이 있다.


문제는 인간의 생각과 동물적 본능이 만나는 것이다. 둘이 만나 욕망이 만들어지면 끝이 없다.


본성이 제어해 주지 않으면 욕망은 무한히 뻗어간다. 오랫동안 인류는 이 본성을 깨우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공동체 사회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서로 따스한 눈빛과 손길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다.


이 눈빛과 손길이 사라지면 언제고 욕망의 봇물은 터지게 된다. 모든 생명체를 다 잡아 먹고도 배가 고픈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인류의 오래된 미래는 아는 사람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다. 노자가 꿈꾼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회다.


최근에 지역사회 곳곳에 작은 공동체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모여 역사의 큰 강물을 이루며 도도히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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