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나는 옛 마을에 대한 강렬한 향수가 있다. 오래 전 일산으로 강의를 갔었다. 매주 화요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일산으로 갔다.
오전에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 ‘오! 시골 길이 나타났다.’ 그러다 ‘헉!’ 옛 마을이었다.
숨이 막혔다. 이런 옛 마을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마을 입구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거의 빈집이었다. 하지만 어떠랴?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골목골목에 어린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보이고, 우물가에서는 흰 옷 입은 어머니들의 왁자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마을을 벗어나올 때는 눈가가 축축이 젖어 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상화 시를 노래로 만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언제 불러도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 걸어/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마지막 3절에 가면 주위를 둘러보다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되면, 들판에서 크게 노래를 부른다. 울음이 섞여 나온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어머니는 마을에 경사가 있는 날에는 쪽진 머리를 단정히 하시고 아주까리기름을 바르셨다. 어머니가 움직이실 때마다 훅 풍겨오는 그 냄새가 참 좋았다.
그런 날에는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어머니 목소리에는 정이 넘쳐흘렀다. 민요를 구성지게 부르며 장구를 치는 어머니의 양 팔은 신명이 났다.
신나게 노는 어른들 옆에서 우리는 키득거리며 떡, 전들을 배불리 먹었다. 마을 전체가 흥에 겨워 들썩였다.
아, 이제 없다. 들판만 황량하게 남았다. 고향에 가도 마을 어른 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다.
그때 동무들은 다들 대처로 떠났다. 골목에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철 맑은 물이 흐르던 도랑은 복개가 되어 흔적도 없다.
몇 년 전에 내가 살던 ㅅ 동에 마을협동조합이 생겼다. 마을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마을협동조합 이사장을 했다.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면 옛 마을에 간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회원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옛 마을을 재현하는 듯했다.
사람은 혼자가 되면 안 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버석이는 모래 한 알이 되어 버린다.
항상 목이 마르다. 도시 사막의 오아시스가 마을협동조합이다. 우리는 가끔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여야 한다.
도시에서는 사람을 둘로 나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악한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 ‘선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피해를 보게 된다.
‘인간이 싫어!’ 다들 외톨이가 되어간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없다.
선인과 악인이 함께 어우러진다. 오늘은 싸우고 내일은 화해를 하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빈다. 옛 마을의 흔적을 찾아서 눈물을 글썽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