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by 고석근

민요



미국 민요를 피터 스피어가 그림책으로 만든 ‘추운 밤에 여우가’를 보고 읽었다.


‘추운 밤에 여우가

달님께 밝은 빛 달라 하네.

이 밤 마을까지 가려면

꽤 길이 머니 밝게 밝게.

이 밤 마을까지 가려면

꽤 길이 머니 밝게.’


책을 읽다 보면 반복되는 흥겨운 가락에 몸을 맡기게 된다. 반복의 리듬, 나는 점차 리듬이 되어간다.


삼라만상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장이다. 나는 물질인 육체적 존재에서 에너지로 화하게 된다.


어릴 적 무당이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노래를 하며 작은 소나무 가지를 잡은 오른 손을 계속 위 아래로 떨었다.


한참 후 무당은 접신(接神)이 된 듯했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얼굴로 신을 말씀을 전했다.


어머니는 계속 머리를 조아리고 뭐라고 간구하며 손바닥을 비볐다. 나도 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우주는 겉으로는 물질이지만, 실은 에너지장이다. 에너지는 영원한 율동이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을 출 때, 우리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


민요의 반복적인 가락은 사람들을 하나의 커다란 율동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서로 반목했던 한들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시골 농장 도착한 여우,

오리와 거위는 겁에 질려

“너희들 두어 마리 내가

꽉 물고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은 추운 겨울밤에 수없이 농장에 출몰하는 여우를 상상하며 긴장이 될 것이다.


‘“통통한 너희들 두어 마리,

내가 꽉 물고 가야 해.”

한입으로 거위 물고서

오리를 둘러맨 힘센 여우

거위 꽥꽥꽥, 오리 덜렁,’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은 서서히 여우가 되어간다. 자신의 육체에 갇힌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는, 농장을 침범하는 여우는 쫓아내거나 죽여야 할 존재다.


하지만 우주의 율동이 되어가는 인간에게는, 한 순간에 여우가 자신이 된다. 에너지장의 세계에서는 삼라만상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 없네 없네 없네.

거위 꽥꽥꽥, 오리 덜렁,

하지만 걱정 없네.’


여우가 된 인간은 스스로에게 안심을 시킨다. ‘하지만 걱정 없네 없네 없네.’ ‘거위 꽥꽥꽥, 오리 덜렁,’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거위와 오리가 없어진 걸 알고 소리친다.


“마을에 여우 왔네 왔네 왔네.”

총을 들고 언덕까지 달려간 아저씨, 빰바밤 나팔을 분다.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여우야, 너는 잡혀 잡혀 잡혀.’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여우야, 너는 잡혀.’


여우는 꽁지 빠지게 달리고 달려 마침내 새끼들 여덟, 아홉, 열 마리가 기다리는 따뜻한 굴에 도착한다.


새끼들이 묻는다.

“아빠, 마을은 어땠나요?”

아빠 여우가 숨가쁘게 대답한다.

“참 아름다웠지. 그럼, 그럼, 그럼.”


‘식탁엔 아빠 여우, 엄마 여우,

새끼들 다 같이 모여 앉아

사이좋게 나눠 먹어요.

너무 맛있는 저녁, 저녁, 저녁.

사이좋게 나눠 먹어요.

너무 맛있는 저녁.’


천지자연은 하나의 잔치다. 먹이가 된 거위, 오리가 불쌍하다고? 그건 문명인의 이기적인 발상이다.


평소에 남의 생명을 먹는 데만 혈안이 된 탐욕의 소산이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몸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그 안에서 서로의 몸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간다. 먹고 먹히는 기막힌 아름다움이다.


문명인이 된 인간은 남의 몸을 먹으려고만 한다. 원시시절의 인간은 다른 몸을 먹고 자신의 몸을 내 놓았다.

하나의 가족인 생명체들은 서로의 몸을 스스럼없이 나눈다. 하물며 여우를 도둑으로 몰아갈까?


여우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어린 새끼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여우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았었다.


어쩌다 문명인은 이리도 타락하게 되었을까? 남의 생명을 비만이 되도록 먹고, 굶주리다 울타리를 넘어오는 생명체들을 도둑으로 몰아갈까?


우리 조상님들은 민요를 함께 부르며 타락하지 않게 되었을 텐데, 우리 사회에는 어쩌다 이런 장치들이 다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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