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는 인사말,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언제? 어디서?’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제는 헤어질 때 하는 그 인사말이 의례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같이 씩 웃으며 “그래”하고 대답한다.
‘같이 밥을 먹는 것’ 얼마나 좋은 사이인가! 식구(食口),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는 가족이 간절히 그리운 것 같다.
인류는 수 만년 동안의 석기시대
에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부족사회는 하나의 가족이었다.
함께 밥을 구하고, 함께 밥을 지키고, 함께 밥을 먹는 공동체. 이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부족사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도덕률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2500여 년 전에 철기가 등장하면서, 부족사회 사이에 치열한 정복전쟁이 일어났다.
대제국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갔다. 인간의 자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외쳤다. “너 자신을 알라!” 이제 식구의 우산 속에 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의 이치(로고스)’를 아는 ‘이성(로고스)’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인간의 로고스를 깨우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농경사회에서는 식구가 어느 정도 보존되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가족, 가문을 벗어나 ‘개인’이 되었다.
이 개인은 외롭다. 그 옛날의 식구가 간절히 그립다. 현대인의 가정 큰 고통은 외로움이다.
삼국지에서 우리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하는 대목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일 것이다.
난세에 각자 개인으로 만나 형제가 되는 의례를 거친 후 그들은 식구가 된다. 그들은 촉을 세운다.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을 군사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은 조조의 위와 손권의 오와 천하를 삼분한다.
하지만 관우가 손권의 의해 죽음을 당하면서 그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식구의 복수를 할 것인가? 나라를 지킬 것인가? 마키아벨리 같으면 당연히 나라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 형제의 의리를 위해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유비는 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켜 친히 오의 정벌에 나선다.
유비는 손권의 군대에게 대패한다. 하지만 삼국지를 읽으며 우리는 유비와 동일시 할 것이다.
2000년 전의 뜨거운 형제애가 각자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다.
비록 전쟁에 패하고 결국에는 나라마저 멸망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 정신은 우리의 가슴에 면면히 흘러오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다. 각자의 개성을 한껏 꽃 피우는 개인, 이 개인들이 뜨거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이 되는 건,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동창회, 동호회, 봉사단체, 사회단체, 사이비 종교 집단...... . 우리는 함께 모래알 같은 밥알을 씹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