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너와 루저

by 고석근

위너와 루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루저(패자)’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항상 반대말인 ‘위너(승자)’를 연상하게 했다.


이와 함께 위너가 되기 위한 온갖 자기계발서들이 서점의 진열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진시황이 죽은 후 천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영웅 항우와 유방의 초한대전,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항우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 천하의 영웅 항우와 그가 한평생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우희의 이별 장면은 눈물겹다.


항우가 우희에게 이별가를 불러준다.


“내가 힘을 쓰면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노라, 불운하여 명마마저 달릴 줄 모르네, 명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 할거냐, 우희여, 우희여 너를 장차 어찌 할꼬.”


그리고는 우희의 목을 베어 자신의 말에 걸고 단기로 한나라 대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많은 신하들이 항우에게 몸을 피하라고 했었다.


“초왕, 이번에는 강남으로 몸을 숨겨야 합니다. 그런 후에 다시 군사를 모으고 힘을 비축하면 천하를 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처음 거병을 했을 때 강남의 자제들 8000명을 이끌었다. 이제 그들을 모두 잃고 26명만 살아 돌아간다. 설사 백성들이 나를 용서해도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항우의 눈에 자신의 부하에서 한나라에 투항한 여마동이 보였다. 항우는 그에게 외쳤다.


“여마동, 유방이 내 목에 막대한 상금을 걸었다니 내가 그 은혜를 너에게 베풀겠다”하고는 자살했다.


진화론의 적자생존은 항우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의 멋진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 안의 뜨거운 영혼의 불길을 느낀다.


인간의 영혼은 결코 구차하게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럼 항우와 유방,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예수는 일찍이 말했다. “천하를 얻는다 한들 영혼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아레테’를 중시했다. 아레테는 탁월함이다. 인간에게는 각자 잘난 게 있다.


그 잘난 잠재력을 한껏 꽃 피우는 것, 그게 가장 멋진 삶이다. 아테네의 올림픽은 아레테의 겨룸이었다.


이기고 지고는 부차적이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활짝 꽃 피우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자신을 활짝 꽃 피우고는 툭툭 지는 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다가야 한다. 고대의 현자 장자는 재상을 맡아달라는 여러 왕들의 제의를 거부했다.


중요한 건, 그가 재상의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능력을 갖추고서 재상 자리를 마다해야 한다.


그런 재상 자리보다 천하를 마음껏 노니는 게 더 멋지지 않겠는가? 재상의 능력을 갖춘 자에게만 이게 보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활짝 꽃 피우지 않은 사람이 ‘마음을 비운다’거나 ‘욕심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노자가 말하듯 ‘진정한 강자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갈 수 있다.


그는 천지자연과 함께 영원히 노닐 수 있을 것이다. 자기계발서처럼 처음부터 남을 이기려 들면 남에게 지게 된다.


남을 이기려는 욕심이 자신의 잠재력의 온전한 계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들은 출발이 잘못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냥 즐겁게 했을 뿐인데, 언제 이 자리에 있게 되었어요.”


아이처럼 무심히 재미있게 하는 것이 대박이 날 것이다. 그 재미의 결과가 돈도 되고 명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산다. 그렇다고 1등을 향해 마구 달리게 되면, 결국에는 루저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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