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법과 자연법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 하늘의 법을 어기고 신들 앞에서 벌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에서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얼굴이 화끈했다. ‘무료 가족사진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에 ‘무료 가족사진 이벤트’라는 광고를 자주 접하며 ‘우리도 가족 사진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준다고 광고하고서는 촬영 현장에서 고가의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결제 직전에 의사 선택을 할 수 있는 탓에 형사 고소를 하더라도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렵고 민사소송도 쉽지 않아 주의가 요구된단다.
댓글들을 읽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어머니께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이벤트 당첨되었다고 사진 찍으러 오라고 하셔서 찍었죠... 그런데 다 찍고 나서는 추가금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괜찮다고 하며 78만원 결재했습니다.’
‘사진 찍어줄 때는 친절하다가 액자랑 결재할 때는 그렇게 거만하고 사람 무시하듯 말하는 걸 잊을 수가 없네요.’
‘사기죄가 성립이 안 된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기인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니? 아득해진다. 법망에만 걸려들지 않으면 무사한 세상, 얼마나 참담한가?
실정법만으로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현실을 넘어서기 힘들다. 인간이 실제로 정한 법은 ‘하늘의 그물’처럼 촘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끝까지 하늘의 법(자연법)을 따르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떠돌게 된다.
그러자 두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위계승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전쟁 중에 둘 다 죽게 되고 결국 삼촌인 크레온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편이었기 때문에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몰아 그의 시신을 벌판에 그냥 두게 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의 시신을 그냥 둘 수 없다며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분노한 크레온에게 안티고네는 말했다. “제게 그런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가 아니니까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 하늘의 법을 어기고 신들 앞에서 벌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크레온의 명령은 실정법이다. 이 실정법은 하늘의 법, 자연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자연법에 어긋나는 실정법은 고쳐야 한다.
인간 사회의 최고의 법은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우리 안의 하늘의 마음, 양심이기에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무료 가족사진 이벤트가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냥 지나가버리면 우리는 하늘의 법(양심)을 어기게 된다.
인간의 양심은 인간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늘이 부여한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슬픈 댓글, ‘세상에 공짜가 없어요.’ 공짜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슬픈가! 인류는 오랫동안 ‘공짜’로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왔다.
천지자연의 운행 원리는 공짜다. 서로 목숨까지 내어주며 삼라만상은 더불어 존재한다.
원시인들은 공짜인 선물을 일상적으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었다.
공짜가 사라지게 되면 모든 게 교환이 된다. 무언가를 줘야만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인간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