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by 고석근

운명


일출과 일몰의 경건한 시간이 되면 그는 자리를 잡고 대지의 영광을 내려다보며 ‘거대한 신비’와 마주한다. 그분의 힘을 이루는 요소들에 노출된 채 하루나 이틀 드물게는 그 이상 동안 발가벗은 채 선 자세로 침묵 속에 움직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말없이 찬양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의식을 위한 담배를 바치기도 한다. 이 신성한 무아경 속에서 인디언의 신비주의적 본성은 최고의 행복과 자기 존재의 근원적 동인을 발견한다.


- 어니스트 톰슨 〮줄리아 M 시튼, <인디언- 영혼의 노래>에서 〮



아이들은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울음을 터뜨린다. 잠시 후 그들은 해맑은 얼굴이 된다.


그리스 아테네에는 수백 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비극’을 관람하며 그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해냈다고 한다.


그들은 비극을 함께 보며 비극적 쾌감, 고대 그리스의 현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정화)를 통해 그들의 정신은 고양되어 갔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을 통하여 감정을 카타르시스한다.”


그들의 고양된 정신은 서양 철학의 시원이 되고, 직접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운명’은 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지은 최고의 비극은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한다.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현자였다.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도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딸과 함께 황야로 긴 방랑의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일까?


그는 자신의 눈을 없애버림으로써 내면의 눈, ‘제3의 눈’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그의 삶은 처참한 비극이지만, 그는 육체적인 눈을 없애버림으로써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한참 울고 난 아이의 해맑은 얼굴, 그는 이제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이를 최고의 인간으로 보았다. 아이는 비극적인 상황 자체를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눈을 잃고 방랑하는 오이디푸스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물질적 세계 이면의 ‘텅 빈 충만의 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스핑크스가 그에게 낸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짐승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사람”이라고 정답을 말했다.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그 답이 맞지만, 물질을 넘어선 세계에서는 틀리는 답이다. 그는 ‘새로운 인간’을 보았을 것이다.


‘발로 걷는 육체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늘을 나는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제 세속적인 모든 인연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가 말한 “살아 있는 동안 부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운명애)라고 했다. 이것은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노예가 노예의 운명을 받아들여 한평생 충직한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전생의 업보 운운하며 현재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해가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패륜의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눈을 찌르고는 지금까지의 세상을 지우고 다른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 존재이면서 영적 존재여서 물질적 차원의 비극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전체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적 눈과 마음의 눈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러면 가혹한 운명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들의 영역인 운명이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오랜 조상, 인디언들은 신성한 무아경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살았다.


그리스의 이성(理性)의 눈으로만 인간과 이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한다. 내면의 눈으로 무아경(無我境), 자신이 사라진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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