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
의지의 마비- 오늘 날 이런 불구자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얼마나 모양을 내고 있는가! 얼마나 유혹적으로 몸치장을 하고 있는가? 이런 병은 지극히 화려한 의상과 속임수의 의상을 입고 있다. 오늘날 ‘객관성’이나 ‘과학성’,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의지를 떠난 순수의식’ 등등 진열장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러한 회의와 마비된 의지를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피안>에서
오래 전에 누군가에게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군인이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쟁에 참가했던 많은 군인들이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건, 우리의 상식이다. 트라우마는 콤플렉스와 달리 극복하기가 힘든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그러면 원자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전쟁을 끝낸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할까?
그런데 그 무기가 불의한 침략 전쟁에 쓰이게 되면, 그 학자는 전범자가 될까? 순수하게 연구만 했으니 무죄일까?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 결과 인류는 엄청난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지만 동시에 기후 위기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어떻게 과학기술을 제어할 것인가? 인류는 과학기술의 윤리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근대의 ‘이성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근대의 이성적 사유는 주체와 객체를 엄격하게 분리한다.
주체가 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자연을 객체로 본다. 당연히 주체는 객체를 대상으로 보게 된다.
주체와 대상이 순수하게 따로 존재한다는 이 생각은 주체가 객체를 마구 착취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문들은 다 객체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들이다. 물리학은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고 사회학은 사회의 이치를 연구한다.
이치를 연구한 결과물은 결국 주체를 위해 쓰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순수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게 된다.
고대 중국의 철인 노자는 말했다. “혼백을 하나로 감싸 안고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혼은 마음이고 백은 몸이다. 노자는 “이 둘을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마음이 몸과 떨어지게 되면, 마음이 이 세상에 따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착각이 ‘순수 학문’ ‘순수 예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현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착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객관성’이나 ‘과학성’,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의지를 떠난 순수의식’ 등등 진열장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러한 마비된 의지를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힘의 의지’라고 말한다. 힘의 의지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의지, 생(生)의 의지다.
이 의지는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될 때 자연스레 솟아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과 하나가 되었을 때와 마음이 몸을 떠나 있을 때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음이 떠난 몸은 생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딴 생각에 빠진 몸은 껍데기 같지 않은가?
순수학문,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떠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딘가에 진리가 있을 거야. 어딘가에 아름다움이 있을 거야.’
그들에게서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니체는 그들에게서 의지의 마비를 본다. 이런 사람은 유령이다.
요즘 좀비 영화가 크게 유행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일정 부분 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리 ‘순수’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멀리 떠난 마음을 불러와야 한다. 항상 마음이 몸에 붙어 있게 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마음과 몸이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
좀비가 된 인간이 눈부시게 발전시킨 과학기술. 좀비가 된 인간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윤리가 가능할까? 마음은 몸이다. 마음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자아(自我)라는 게 있어, ‘나’라는 망상에 빠지고, ‘나’가 만든 온갖 허상에 빠지게 된다.
현대의 모든 위기는 몸을 떠난 마음이 지어낸 허상에서 온다. 우리는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인간으로 재창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