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와 공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바에 거처하는 까닭에 도에 가까운 것이다. 상선약수 上善若水. 수선리만물이부쟁. 水善利萬物而不爭. 처중인지소약 고기어도.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 노자, <도덕경 제8장>에서
약수터에 다녀왔더니 로봇이 청소를 하고 있다. 아내가 로봇에게 청소를 시키고 나갔나 보다.
어떻게 이 방 저 방 구석구석을 다니며 저리도 청소를 잘 할 수 있을까? 의자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며, 방문턱을 넘어가며... 참 똑똑하다.
하지만 저 로봇의 길(道)은 단순할 것이다. 가다가 막히면 돌아서 가기. 이 원리 하나로 저 수많은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수많은 생명체들이 저 원리 하나로 한평생을 멋있게 살다 갈 것이다. ‘앞으로 가다가 막히면 돌아서 가자!’
그들은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살아가기에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럼 인간은 어떤가?
노자는 말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바에 거처하는 까닭에 도에 가까운 것이다.”
노자는 도의 현현을 물에서 보았다. 우리도 물처럼 살아가면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길이 막혔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허상인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막히지도 않은 길을 빙빙 돌다 우리는 수없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망상에 빠질 수 있다.
이 생각만 죽이면, 우리는 물처럼 멋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죽인 상태로 생각하는 게 명상이다.
명상의 상태에서는 도에 맞게 행동을 할 수 있다. ‘나’라는 의식이 사라졌으니까. 몸이 물처럼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이 일어나게 되고, 생각에서 ‘나’라는 자의식이 생겨나, 결국에는 나 중심의 생각, 욕심이 생겨난다.
욕심으로 하는 행동은 도에 맞지 않게 된다. 이 욕심에 빠지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공자는 도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중용(中庸)’을 제시했다. 중용은 중의 마음(中)으로 일상(庸)을 살아가는 것이다.
중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다. 욕심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텅 비운 마음이 중이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옳음과 그름... 이 상반되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있는 마음이 중이다.
이 중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한평생을 물처럼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이 중의 마음으로 대처하려면, 오랜 기간 동안 마음과 몸을 갈고 닦아야 한다.
물처럼 고요한 마음이었다가 물처럼 어느 한 쪽으로 흘러 갈 수 있는 마음. 자신을 텅 비운 채 흘러 갈 수 있는 몸. 중용이다.
한평생 공부해야 하는 인간, 우리는 인간의 숙명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 로봇보다도 못한 삶을 살다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