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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by 고석근

희생양


모방으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과 폭력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대상에 대한 금지, 즉 욕망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모방 경쟁으로 귀착되지 않는 다른 욕망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지라르가 제시하는 ‘좋은’ 모방의 모델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다. 모든 타인을 위한 자기 포기의 첫 모델이 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 그리스도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의 메커니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라르는 주장한다.


- 김진석, <르네 지라르>에서



언제부턴가 빌라 뒤의 쓰레기 내놓는 곳에 개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 그쯤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

누가 처음 저 몰염치한 짓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 그는 우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마 저녁에 개를 데리고 나왔는데, 거기서 개가 낑낑댔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어둑한 곳이라 보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는 개똥을 치우지 않고 부랴부랴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옹벽에 누가 벽보를 붙여 놓았다. ‘개는 똥을 치우지 못하니 사람이 개가 되지 않으려면 개똥을 치워라.’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쉬웠을 것이다. 벽보 아래에 개똥이 계속 생겨난다. 쓰레기 치우러 오는 분들은 개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말했다.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원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욕망들은 사실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욕망을 추구하고 충족을 해도 항상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말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고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라.”


아마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개똥을 그대로 두고 가는 견주들도 잠시만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내면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에 쉽게 다른 사람을 따라한다.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성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는 중국 청나라의 강희제, 드라마에서 그의 언행을 보며 생각한다.


그는 자신과 청나라의 위엄을 지키려 충신들을 희생시킨다. 충신들도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원한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 권력, 재물일 것이다. 그러니 그는 한정된 권력과 재물을 지키려 자신의 충신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대안을 제시한다. “모든 타인을 위한 자기 포기의 첫 모델이 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 그리스도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의 메커니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현대사회가 아비규환의 세상이 된 건, 돈이 최고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돈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는 최고의 욕망의 대상을 ‘그리스도’로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청빈한 선비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그의 말 한마디를 왕도 두려워했다.


서양의 로마에서는 한때 황제와 귀족들이 견인주의(堅忍主義) 철인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욕망을 다스리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부자 되세요!”하고 인사를 할 때, 감히 개똥을 치우지 않는 견주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일 개똥이 길에 늘려 지나가기도 힘들게 되면, 어느 견주가 희생될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원한을 그에게 풀고 다시 힘을 얻어 돈을 향해 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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