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사회가 개인들을 사회의 필요에 적응시키는 도상에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리고 개인의 행복과 동시에 희생은 그 스스로가 전체의 도구와 유용한 구성원으로 느끼는 데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이제 편안해 하는 것 같다.
-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에서
언제부턴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 큰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거야?’ 그렇다. 큰 것이 그동안 얼마나 추한 모습을 보여 왔던가?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던가? 가문이라는 큰 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어 왔던가?
민주화가 진행되며 한 개인,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생각의 이면에는 이 시대의 새로운 신, 자본(資本)의 명령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資本主義)다. 자본이 주(主)가 되어 있는 시대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이 자본 신(神)은 우리에게 무한정한 풍요를 가져다준다. “이 풍요로움을 다 누려!”
이 명령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이 시대의 아포리즘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이 아포리즘에는 오랜 인간의 꿈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큰 것이 그다지 필요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소소한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결국 새로운 소확행(소비가 확실한 행복)이 되어버렸다.
현대 철학의 아버지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의 행복과 동시에 희생은 그 스스로가 전체의 도구와 유용한 구성원으로 느끼는 데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이제 편안해 하는 것 같다.’
큰 사회의 하나의 부품이 된 자신을 편안해 하는 인간,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지만 이 사회의 부품이 되지 않고서 어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가?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자신의 ‘몸값’이 높아도 행복할 수가 없다. 높은 몸값에 우쭐해있다가도 더 높은 몸값들을 보며 항상 주눅이 들어있어야 한다.
또한 그 높은 몸값이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해야 한다. 몸값으로 존재하는 현대문명인은 늘 불안하다.
모든 인간관계가 몸값의 관계가 되어 모든 인간은 파편화된다. 먼지처럼 작아진 인간, 우리의 실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각자 하나의 세계다.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 가장 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가장 큰 존재가 될 때, 가장 작은 것도 아름답게 된다.
자신의 왕국에서 무엇이 아름답지 않으랴? 인간은 모두 왕과 신이 되어야 한다. 왕과 신이 되어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삼라만상은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천지사방을 둘러보면, 어느 것 하나 당당하게 살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이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오래 전에 이상 시인이 오감도에서 슬프게 노래한 ‘13인의 아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우리는 그동안 무조건 앞으로 질주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무서워하며 무서운 인간이 되어갔다.
이제 막다른 골목인 줄 알았던 골목이 뚫린 골목이라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