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하여

by 고석근

노인을 위하여


노년은 젊음, 그것에 비할 바 없는 기회인 것을, 비록 차려입은 드레스만 다를 뿐, 하여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하늘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 낮이 가득

하다네.


-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미국의 시인)



어제 공부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흩뿌리고 있다. ‘헉!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야겠다.’


우산을 펼쳐들었다. 어디로 가나? 망설여졌다. 버스 타는 데까지는 꽤 멀다. ‘택시를 탈까? 아니야, 버스를 타자 더 나이 들면 버스도 타기 힘든 날이 올 거야!’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멈춰 서 있다. 달려가 간신히 탔다.


둘러보니 빈자리가 하나 있다. 손잡이를 잡으며 조심스레 가 앉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거부의 몸짓을 한다.


머리가 허연 노인이 옆에 앉으니 싫은가 보다. 이 시대에 노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촉천민’이 되는 것이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노인들이 참 싫었다. 그때는 노인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라, 대놓고 거부의 몸짓을 하지는 못했다.


왜 젊은이들은 노인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크게 보면, 노인이 쓸모없게 된 세상의 변화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 않는가? 나는 그 원인을 ‘인간의 욕구’에서 찾고 싶다.


인간의 욕구는 크게 두 가지다. ‘자아실현의 욕구’와 ‘자아초월의 욕구’다. 자아실현은 매슬로가 말한 욕구 5단계를 생각하면 된다.


1단계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의 욕구, 3단계는 사랑과 소속의 욕구, 4단계는 자기 존중의 욕구다.


이 욕구들이 충족이 되면 인간은 마지막 5단계,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욕구들은 ‘육체적 존재’로서의 욕구다.


인간에게는 육체를 넘어서는 자아초월의 욕구가 있다.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면서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 건강이 왕성하기에 자아실현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어떤가?

가장 낮은 단계의 욕구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조차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과 자기 존중’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여유가 없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그럼 노인들은 어떤가? 젊었을 적에 매슬로가 말하는 욕구들을 충분히 충족했는가?


대체로 낮은 단계의 욕구들밖에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그들은 ‘사랑과 자기 존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욕구들이 충족되어야 인간은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자아실현이 되어야, 인간은 자아를 넘어서는 영적인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노인이 자아초월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 노인의 몸은 위엄과 기품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그때 노년은 ‘젊음, 그것에 비할 바 없는 기회’가 되고,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하늘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 낮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마라.

인생은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니

만물의 근본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이란 실재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우리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원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한 말이 아니다.


(...)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는 믿지마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신이 있다.


-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 <인생예찬> 부분



우리가 ‘인생은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아실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근본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너는 원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하지만 육체는 사실 에너지장(場)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생로병사를 겪을 뿐이다.


자아초월의 세계로 나아갈 때, 우리는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도 시인처럼 ‘인생예찬’을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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