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by 고석근

롤모델


아무런 본보기 없이 우리 스스로 삶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1904-1987, 미국의 신화학자)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를 쓴 중국 한 대의 사마천은 ‘분노가 터져서 책을 썼다’고 했다.


흉노족에게 항복한 친구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치욕적인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분노는 하늘까지 닿았을 것이다.


그는 황제들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일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는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그는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두려워 사기를 썼던 것이다. 그가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한 이유다.


이릉을 변호하다가 죽게 되면, 후세 사람들이 그를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그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두 개다. 하나는 조에(zôé), 다른 하나는 비오스(bíos)다. 조에는 육체적 생명을 말하고, 비오스는 사회적 생명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육체적 생명만으로는 온전한 삶이 아니다. 사회에서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사기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자신의 본보기를 찾게 되고, 본보기는 계속 그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


‘나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거야?’ 조셉 캠벨은 “아무런 본보기 없이 우리 스스로 삶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본보기는 요즘 말로 하면, ‘롤모델’이 될 것이다. 원시인들은 신화 속의 신들을 통해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찾아갔다.


그 후 문명시대에는 철학과 종교가 여러 롤모델을 보여주었다. 그럼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열광하는 롤모델은 누구일까?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꼽을 것이다. 그는 지금의 모바일 앱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는 말했단다.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해도 좋다.”


그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와 함께하는 점심 한 끼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 그는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함께 점심을 하며, 엄청난 지혜를 얻을 것이다.


그 지혜는 애플을 능가하는 새로운 기술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모바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맞게 될 것이다.


그는 대학원 강의실 같은 회사를 원했다고 한다. 나는 직장을 다니다 대학에 갔다.


1학년 새내기가 바라본 대학 캠퍼스는 자유 그 자체였다.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의 대화하는 소리들이 새소리들보다 아름다웠다.


인공지능시대에는 이런 회사들이 생겨날 것이다. 잡다한 일은 인공지능이 하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처럼 대화만 즐기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많은 젊은이들이 스티브 잡스가 되기 위해 용맹정진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튼튼하고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 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부분



오랜 가부장 사회는 세상의 사나이들로 하여금 일생 동안 ‘기둥 하나를/세우기 위해’ 살게 했다.


얼마나 엽기적인가!


시인은 사마천을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사내가 된 사내’로 재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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